
뉴요커에서 ‘숨은 채로 세운 계획 A Plan Made In Hiding’라는 아티클을 보게 되었는데, 이 글은 현재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기묘한 역설 중 하나를 보여준다. 시민권자처럼 성실히 생활하던 불법이민자들이 하루아침에 체포와 구금의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 이 기사에 등장하는 로살린다와 마누엘 부부의 이야기는 단순히 ‘불법’과 ‘합법’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10살 무렵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국경을 넘은 이래, 수십 년간 세금을 내고 자녀를 시민권자로 키워낸 그들은 누가 뭐래도 ‘미국 사회의 부품’들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습격을 피해 집 안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17세 딸의 생일 파티에서 자신들의 ‘자진 출국’을 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과연 트럼프의 광기아래 진행되고 있는 이민 단속이 불법체류를 양산하는 근본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까?
미국 경제는 저숙련 노동력을 끊임없이 갈구하면서도, 그 노동력이 유입될 수 있는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데는 태만했다. 물론 단순하게 평가할 수만은 없는,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과 실제 노동력 부족 사이의 괴리에 따른 여러 사정은 존재했을 거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이나 대안 없이 구닥다리 가이드라인으로 무자비한 가위질만을 하고 있는 미국의 이 상황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트럼프 정부도 마찬가지다. 구금시설 및 정책이행을 위해 ICE에 투입되는 예산만 해도 어마어마한 상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큰 사회적 비용의 발생과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가족이 해체되며 남겨진 시민권자 자녀들은 심리적 외상을 입게 되고, 사회 기반을 지탱하는 필수 인력들이 사라지며 발생하게 되는 현장의 비용상승은 위대한 아메리카의 물가상승을 동반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이 대륙에서 수십 년 동안 생활했던 로살린다가 그녀의 옛집을 구글 맵으로 검색하며 ‘그때는 흙길이었는데 지금은 시멘트가 깔렸네’라고 말하는 장면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그녀는 미국에서 시멘트를 깔고 건물을 올리는 일을 도왔지만, 정작 자신이 그 건물 안에 머물 권리는 얻지 못했다.
국가는 단순히 법을 집행하는, 선로를 달리는 기관차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도록 다정하게 감싸주는 거대한 방호벽이어야 한다.
AI, 로봇, 우주시대의 문턱에 서 있는 현시대 우리가 걸을 미래는 더욱더 가시밭길일지도 모른다. 국가가 치밀하게 분석하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존재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그것을 외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업의 뒤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국가는 무엇을 최선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낡은 법전 뒤에 숨어 창문을 깨뜨리는 것을 그만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