휑하네…
태어나서 처음 혼자 계약했던 스튜디오(부엌이 딸린 원룸)는 창 옆의 넓은 공간과 화장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부엌이 전부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샌프란시스코였지만 집만큼은 전혀 새롭지 않았다. 지은 지 1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빅토리아식 건물들은 – 밖에서 보기에는 예뻤지만 –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시골집 같았다. 이 정도면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없는 게 아니라 변화 자체가 없는 건 아닐까 의심했다. 물론 퍼시픽 하이츠의 저택이나 마켓 스트리트 근처의 새 아파트들은 내부도 그럴듯했지만, 내가 렌트를 할 수 있을만한 집들은 모두 하나같이 구식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이상했던 건 에어컨이 달려있는 집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더운 곳인데 에어컨이 없으면 못 견디는 거 아닐까?’ 했지만 에어컨이 없는 집을 제외하자니 볼 집이 없다. 살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실내에 있는 것만으로 더위를 피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이곳은 한여름에도 최고 온도가 우리나라처럼 높거나 공기가 습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곳이 너무 따뜻해서 집 없이도 살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는 태평양과 바로 붙어있어 날씨 이야기를 할 때 안개를 떼어 놓을 수가 없는데, 그것이 샌프란시스코 추위의 주범이기도 하다. 그 안개는 가까운 바다에 장벽을 치고 있다가 밤이 되면 육지로 밀려 들어오는데, 그때 도시는 마치 하이드 씨의 에든버러 올드타운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 그 안개 사이로 부는 찬 바람이 대충 조립된 나무 창틀 사이로 밀려들어오면 준비가 안된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겨울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히터는 대부분 효율이 높지 않은 구식인 데다가 창틀로는 계속 찬 공기가 들어오니 방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는다. 덕분에 나도 늘 히터 옆에 붙어서 덜덜 떨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대체 왜 집을 이렇게 만든 걸까?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해서 겨울에도 온도가 영상 10도 이하로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집을 지을 때 추위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란 걸 깜빡 잊었을 수도 있다. 집은 따뜻한 낮에 지을 테니 말이다. 아니 히터가 있는 것을 보면 생각을 하긴 했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아 문제지만…
처음에 몇 달간은 왜 이곳이 살기 좋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마켓스트리트, 유니온스퀘어, 피어 등 유명한 곳은 여행객들과 노숙자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거리도 지저분했으며, 텐더로인 근처는 혼자 걷기조차 위험했으니까. 하지만, 점점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생각은 달라졌다.
해가 넘어갈 때쯤이면 인적이 사라지는 새크라멘토 스트리트와 그 끝에서 늘 빈 테이블을 내어주던 단골 레스토랑. 주말이 되면 새벽같이 주섬주섬 노트북을 챙겨가서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사람 구경만 하다 왔던 프리시디오 안의 스타벅스. 가끔 할 일이 너무 없으면 두 시간을 꼬박 걸어가 온종일 뒤적거리던 하이트 스트리트의 중고 레코드점. 고기가 먹고 싶을 때마다 버스를 집어타고 갔었던 다운타운의 불친절한 테드 스테이크 하우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용케 찾았던 16 애비뉴의 타일드 스텝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샌프란시스코 전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느 때나 두 팔 벌리고 한껏 들이마실 수 있었던 깨끗한 공기. 이 정도만 해도 냄새나는 마켓스트리트 정도는 충분히 참아줄 수 있으니까.
변변한 가구 하나 없이 생활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스튜디오를 떠나는 날도 그랬다. 그 방 안에만 있으면 늘 춥고, 우울하고, 외로웠기 때문에 떠날 때 하나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텅 비워져 처음 입주하던 날과 데칼코마니가 되어버린 빈 방 앞에서 그 문을 쉽게 닫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어설프게 요리를 해 먹고, 건조기의 온기가 가시지 않은 세탁물 위에 누워 잠들고, 한국 드라마를 한국에서보다 더 많이 봤다는 것을 나는 금방 잊게 될까 하며 계속 뒤돌아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곳이 서울보다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살아간다는 건 좋고, 나쁜 것으로 분류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소가 어디든, 머문 기간이 어떻든, 그곳에서의 경험과 기억의 조각들은 모두 내 몸의 어딘가에 남아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 다시 선명하게 복기되어 버린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머무는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생활한다는 본질은 같다. 동물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여행이나 이사도 살아가는 것의 연장이지만 그 의미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뿐이다.
바쁘더라도 가끔은 살아가는 것, 그 주변을 들여다보는 것에 소홀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