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인터뷰를 위해 엄청난 사전준비를 한 가와카미 미에코도 놀랍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기대했던 답을 하나도 주지 않는 에드혹의 화신 무라카미 하루키도 대단하다면 또 대단하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사단장 죽이기를 집필할 때 즈음 가와카미 미에코라는 작가와 네 번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를 다룬 대담집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는 있어요. 물론 엄청나게 재밌는 건 아니지만… 하루키는 인터뷰 내에서 시종일관 날마다 일정 분량을 열심히 쓰는 것 외에는 어떤 일반적 패턴도 없고 작품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 의도도 없으며 구조적인 구상에 의거한 스토리 빌드업도 하지 않는다며, 그에게 무언가라도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있는 가와카미 미에코를 무력화시킵니다. 하지만, 분량이 책 한 권이라 그런 기조 안에서도 특별한 그만의 글 쓰는 방식을 엿볼 수는 있으니,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일독이 의미 없지는 않겠네요.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작가의 일반적인 작품 인터뷰와는 꽤 차이가 있는데, 테크니컬 한 글쓰기보다는 스토리를 구조적으로 이어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데다가 또 그 방식이 꽤 독특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떻게 문장을 기술적으로 이어가는가’와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해 가는가’는 서로 지향점이 다를 수밖에 없긴 하니까. 

일반적인 글쓰기 관련 서적을 보면 이야기를 짓는 법보다는 문장을 만들고 이어가는 방법을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기술적인 글쓰기는 학술적 영역이어서 큰 고민 없이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수학적으로 집필하는 게 가능하고, 읽는 사람들에게도 – 지금까지 배워왔으니 – 그런 방식은 어느 정도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사건의 조각들을 연결해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평범하거나 예상 가능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작가마다 모두 다릅니다. 

하루키는 글을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테크니컬 하게 문장을 이어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야기해요. 두 장면을 연결하기 위해 논리를 기반으로 기술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거죠. 하루키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간입니다. 원하는 때 언제든지 글을 써 내려갈 수는 있겠지만, 이야기가 몽글몽글 떠오르다가 글을 쓰고 싶어 어쩔 수 없는 상태까지 기다리는 것.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우산장사처럼, 가을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수면 위의 찌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그렇게 여러 소재들이 머릿속에서 이야기의 덩어리로 뭉쳐지기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시간은 배반하는 일이 없으니까. 

그건 글을 쓸 때도, 사업을 구상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업무용 파워포인트를 구성할 때도 모두 똑같습니다. 엘리먼트 사이의 관계를 가치로 승화시켜 내는 것은 단순히 논리적 연결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니까요. 그것 위의 무언가가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건 언제 올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시간을 들이면 언젠가는 – 낚시에 송어가 끌려 나오듯, 겨울의 초입에 비가 내리듯 – 내 앞에 옵니다. 

그가 강조하는 다른 하나는 바로 적절한 비유와 함께 어우러지는 완성도 높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하루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향상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노력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 작가의 작품을 훑다 보면 – 저는 늘 기찰군관譏察軍官이 연좌제緣坐制 이행을 위해 역적의 족보를 훑듯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뒤져가며 독서를 합니다 – 소재나 스토리는 다르지만 묘사나 표현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이런 부분은 영화와는 또 다른데, 아무래도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 피드백을 주고받는 작업 방식과는 달리 오롯이 혼자 일해야 하는 작가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의 글짓기 방식을 존중하긴 하지만 모든 작가들이 그렇게 작업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예측불가능한 전개는 마음에 들지만 모든 소설이 의도자체가 모호한 결말로 귀결되는 게 답답하기 때문이에요. T라서 그런가? 뭔가 스스로 부족한 퍼즐 조각을 만들어내며 인과를 찾기도 애매한 게, 작가가 원래 어떠한 의도도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맥 빠져라. 하지만 저는 그의 작품을 꽤 좋아한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치고 싶네요. 앞으로도 그의 새로운 작품을 더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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