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강릉에 갔다.
동료 중 하나가 KTX로 후딱 다녀오면 점심때 출발해서 저녁이면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매일 회벽에 둘러싸여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 정도라면 오랜만에 한번 휙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인터넷을 확인하니 청량리역에서 떠나면 강릉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러고 보니 작년 제주도에 다녀온 이후로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매년 바다를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평소보다 조금 한가한 날, 우리는 가방을 그대로 들쳐 메고 강릉으로 향했다. 도착할 때까지 뭘 할까 뒤적거리는 사이에 벌써 열차는 양평을 지나고 있다.
옛날에는 강릉에 가려면 고속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은 달렸다. 어려서부터 멀미가 심했던 나는 대관령을 건너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구불구불 끝도 없는 대관령은 늘 구동 중인 원심분리기처럼 내 몸에서 정신을 유리시켜버렸는데, 그 우주유영은 늘 대관령의 끝자락에 있는 하제민원 즈음을 지날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15년 말, 평창군 진부면과 강릉시 성산면을 관통하는 총길이 22킬로미터의 대관령 터널이 완공되었고, 그 이후 버스로 5시간이 넘게 걸리던 서울-강릉의 주행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로 단축되어 버렸다.(할렐루야) 덕분에 강릉과 서울은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고, 평창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어쨌든 그 덕에 멀미 걱정 없이 편안하게 강릉에 도착해서는 유명하다는 초당순두부를 먹고, 바로 안목해변 카페거리로 향했다. 안목해변 다음 목표는 신사임당의 생가인 오죽헌이었지만, 한번 바다를 본 우리는 볕 좋은 해변 근처의 카페 옥상에 눌러앉아버리고 말았다. 하긴 서울에서 낙성대를 수없이 지나쳤어도 강감찬 장군의 생가를 방문해본 적은 없다. ‘뭐든 그 자리에 잘 있으면 된거지 뭐.’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바다를 보면서 한마디 던진다.
동료 A: 여기서 저 수평선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동료 B: 글쎄요? 한 10킬로? 100킬로?
궁금하면 계산하면 된다.
— 내가 계산해 줄게.
나는 늘 펜과 수첩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 우선 우리가 4층 건물의 옥상에 있고, 자리에 앉아서 바다 쪽을 보고 있으니까. 건물의 한 층을 3m라고 가정하면, 우리가 바다를 보는 눈높이는 지면에서부터 13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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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우리 시선을 수면과 맞닿는 부분까지 직선으로 표현하면,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직각 삼각형을 그릴 수 있잖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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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 우리가 구하고 싶은 거리를 x로 놓고, 항의 전개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지구의 반지름을 y라고 하자고. 여기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적용하면, 가장 긴 변인 (지구의 반지름+13m)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인 지구의 반지름, y의 제곱과 구하고 싶은 거리, x의 제곱을 더한 값과 같게 되지? 자. 이제 전개를 하고 지구의 반지름인 6,400km를 y에 대입해서 계산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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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전개하고 불필요한 변수를 소거하면서 해를 구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우리는 담배 좀 피우고 올게요. 계산하고 계세요.’ 한다. 그동안 스마트폰의 공학용 계산기를 사용해서 금방 거리를 구할 수 있었는데, 그 거리는 13킬로 정도로 자전거를 달리면 한 시간 정도에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조금 기다리니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 거리 구했어. 거리는 있잖아.
동료 B: 아 그런데, 오죽헌 안 가봐도 될까요?
동료 A: 여기까지 왔는데 오죽헌 정도는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동료 B: 그럼 빨리 움직이죠!
— …
(서울의 강감찬 장군 생가도 한번 안 가는 사람들이 오죽헌에는 뭐하러 가냐고! 그보다 그렇게 궁금해하던 거리를 구했다니까. 조금 전에 100킬로 아니냐고 했지? 실제 거리와의 갭을 알게 되면 상당히 놀랄텐데?)
동료 B: 그런데, 신사임당은 이름이 임당이에요? 사임당이에요?
동료 A: 사임당이지.
동료 B: 그거 본명이에요? 가명이에요?
(거기서 가명이 왜 나옵니까. 사임은 호잖아. 이름은 제대로 나와 있는 문헌이 없어. 그리고, 거리는 13킬로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사임당이 별명이든, 암호명이든, 혹은 그녀가 신사이든 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건물을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