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미술관

20220528 작품01

월드타워 지하 1층에는 ‘성수 미술관’이라는 그림 그리는 카페가 있다. 언젠가 타워 지하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주했던 그 카페는 이만 원 남짓의 요금을 내면 두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실이었다. 커피는 주문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본요금은 반드시 내야 한다. 역시 카페라기보다는 화실이죠?

캔버스, 붓, 물감, 물통, 팔레트, 종이, 색연필과 파스텔까지 제공되니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아니, 두 시간 넘게 죽치고 앉아 그림을 그릴 의지만 준비하면 된다. 심지어는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캔버스도 있다.

‘설마 뭘 그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여길 오는 사람이 있으려고?’

하며 주변을 둘러봤는데 대부분 밑그림이 준비된 캔버스를 선택해서 칠만하고 있었다. 하긴 색을 창의적으로 선택하면 되니까. 필수 미술도구 외에도 물감이 튀어도 예쁜 외출복이 지저분해지지 않을 수 있게 앞치마까지 제공되는데, 재질이 두툼해서 꽤 맘에 들었다. 붓의 물기를 제거할 때도 슥슥 문지르기 딱 좋다.(혹시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면 이 지면을 빌어 사과드려요)

오늘은 빈 캔버스가 없어서 종이를 선택했는데, 크기가 엄청나게 컸다. 덕분에 밑그림을 그리고 나니 질려버려서 칠이고 뭐고 더 이상 앉아있기가 싫어졌다는 거. 입시미술을 하는 학생들이나 미술 전공인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사실 재미있는 드라마도 두 시간 연달아 보고 있으면 질려버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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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색 색연필도 있길래 강아지도 한번 그려봤다. 나는 집중력이 없기 때문에 지구력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타입인데, 미술은 아이디어 만으로는 택도 없다. 어머님께서 말리지 않았으면 나는 밥도 제대로 못 벌어먹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너 정도는 옆집 개도 그린다는 말은 조금 상처가 됐었다.(아들이라도 그런 이야기는 삼가 주세요.)

이곳의 단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식당가 옆이어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꽤 많다는 거다.(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장점이 될 지도..) 낙서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큰 캔버스를 채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밑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린다. 게다가 칠은 밑그림과는 또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렇게 엄한 짓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진다. 뒤를 돌아 ‘제발 기대하지 좀 말라고요!’라고 외치고 싶다. 기대도 안 하고 있겠지만… 

어쨌든, 그림 좀 그린다는 사람이라면 할 일 없는 주말에 가서 반나절 정도 시간 때우기 딱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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