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북스에 대한 단상

산타나로(Santana Row)의 입구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아마존의 오프라인 전문 서점인 아마존 북스를 만나볼 수 있다. 아마존은 2015년 시애틀에 아마존 북스 1호점을 낸 이후 2018년 8월 현재 미국 전역에 16개의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데, 골목상권의 침해라는 의견을 의식해서 그런지 신중하게 매장을 늘려 나간다는 느낌이다. 이런 행보는 오프라인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위한 테스팅을 하는 중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

산타나로의 아마존 북스 매장 자리는 사실 오프라인 서점인 반스 앤 노블이 있던 자리인데, 이는 상징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한 때 미국 전역에 매장이 없는 곳이 없었던 반스 앤 노블은 아마존의 공격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오프라인 비즈니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킨들 같은 이북용 디바이스인 누크를 발매하며 끝까지 살아남아보려 했지만, 생태계를 고민하지 않은 단순한 비즈니스 복제 만으로는 역시 역부족이었을까? 그들은 결국 아마존에게 서점 분야의 노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고, 시가 총액은 2018년 현재 그들이 가장 잘 나가던 2006년에 비해 1/4 도막이 되어 버렸다.

온라인 비즈니스로 오프라인 서점을 자근자근 밟아버렸던 아마존이 그 자리에 그들의 오프라인 매장을 낸다? 뭔가 아이러니컬하다. 반스 앤 노블스 입장에서는 자존심 구겨지는 일이 아닐 수 없을 텐데, 권리금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테니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아마존 북스는 물론 기존의 오프라인 서점과는 여러 차이점들이 있다. 책의 정보나 가격을 매장 여기저기 붙어있는 바코드 스캐너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던지, 아마존 앱을 사용하여 연계 구매를 할 수 있다던지 하는 것들이 그것인데, 그런 것은 너무 당연한 변화니까. 어쨌든 아마존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여러 디지털 디테일 관련된 부분보다는 책을 구매한다는 고객의 니드 입장에서 이 매장을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어 졌다. 어쨌든 그들의 목적은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을 테니 말이다.  

어떤 가치를
어떤 사용자 경험을 통해 고객에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고객의 신뢰를 획득한 후  
다시 이를 매출로 연결시켜
지속 가능성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 낼 것인가?

아마존은 온라인에서 획득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서 우선 고객이 관심 있을 만한 물건들을 선정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매장의 규모를 거대하게 운영하면서 발간되어 있는 모든 책들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많이 팔렸거나, 고객이 많은 관심을 보였던 책들 만을 전시한다. 책 외의 물건들도 아마존의 디바이스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 카테고리별로 가장 많은 판매와 좋은 평점을 기록한 것들만 들여놓는다. 거기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하는데, 책들을 표지가 보이도록 배치하거나 모든 판매 물품에 리뷰를 달아주는 것이 그것이다.  

사실 책의 리뷰나 정보 꼬리표를 달아두는 방법은 여러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미 과거부터 사용해왔던 방법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인디서점에서 책 앞에 손글씨로 써 붙어있던 서점 직원이나 고객의 의견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존의 정보 꼬리표는 집단지성을 통해 선정되어 통계적으로 신뢰도가 훨씬 더 높다는 장점이 있다.  

책을 분류할 때에도 아마존이나 킨들의 데이터를 통한 패턴 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면,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가판은 ‘Most-Wished-For Books on Amazon.com’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이는 아마존에서 고객들이 위시리스트에 가장 많이 넣어 둔 책들이다. 각 책장의 행마다 왼쪽 끝에는 인기가 있는 책들을, 그 오른쪽에는 해당 책을 구매했던 고객들이 관심 있어하거나 함께 구매했던 책들을 함께 배열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 분석기법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에 유사성의 신뢰도가 놀랄 만큼 높다는 데 있다.  

지역별 데이터를 활용하여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는 책’이라던지, 킨들 사용 데이터를 활용하여 ‘삼일만에 읽어버릴 수 있는 책’과 같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섹션을 만들기도 한다. 섹션을 흥미롭게 정의하고 책을 배치하는 것은 기존 오프라인 서점의 핵심 역량이어서 역시 방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타이틀들이 서점 직원 몇 명의 아이디어에 의해 결정되던 과거 오프라인 서점들보다는 고객이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아마존 북스는 ‘성공적인 O2O(Online to Offline) Business 모델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를 테스팅하기 위한 아마존의 파일롯 프로젝트이다. 기존 오프라인 매장이 몰락하게 된 계기였던 쇼루밍(Showrooming: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확인하고, 구매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수행하는 행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사용자 경험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는 에코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마 그들의 목표일 것이다. 물론 아직은 부족하거나 불편한 부분도 분명히 보이지만, 아마존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들의 목표를 달성해 나갈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현재로는 그런 O2O 모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모두 투자를 할 수 있는 거대한 기업들만이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거대 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유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모델을 구상해 낼 필요가 있다.

개인의 경험 자체가 점점 획일화되고 일반화되는 것도 아쉬운 것들 중의 하나다. 가끔 서점에 들어가서 누구도 세상에 존재하는지 몰랐던 책을 처음 만나보고, 또 들고 나오는 즐거움은 점점 사라질 테니 말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슬프지만, 책을 쓰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도 역시 우울한 일이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고 고객들은 짧은 시간을 들여 의미 있는 가치를 얻어야 하겠지만,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나 소파에 늘어져서 내 인생에 전혀 쓸모없는 책을 재미없게 읽는 경험도 나는 잃고 싶지 않으니까.  

개인적으로는 크기를 한눈에 대중할 수도 없이 컸던 맨해튼의 반스 앤 노블스 매장에서 다리가 아프도록 돌아다니면서 예쁜 책들과 음반을 구경했던 것이 – 구매할 확률이 높은 책들만 골라 나열해 둔 아마존 북스보다 – 훨씬 더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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