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터넷에서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밴드를 주제로 2019년에 작성된 칼럼을 보게 되었다. 밴드의 이름은 익숙했지만 나는 고작 ‘앵콜 요청 금지’라는 곡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취향 없이 이런저런 음악들을 귀에 걸리는 대로 듣는 습관 덕에 어떤 곡이든 대부분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거기까지다. 이 밴드도 그 정도였다. 마치 이름만 기억나는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처럼… 나는 이 밴드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칼럼은 오래전 ‘브로콜리 너마저’의 <2009년의 우리들>이라는 곡을 모티브로 썼던 자신의 글을 회고하며 시작되고 있었다. 그 기사는 1999년 수습기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글이다. 10년 후에는 노련한 민완기자가 되어있을 것 같았지만 그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내용과 함께, 그래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칼럼을 쓸 수 있는 상황이 행복하다고 했다.
기자와 그의 와이프는 그 칼럼을 쓸 당시의 10년 전인 1999년에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에 빠져있었고, 그해 3월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10년 후 그 아이는 훌쩍 커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브로콜리 너마저가 3집 <속물들>을 발매하며 기념 공연을 할 때, 그는 반가운 마음에 공연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산부인과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2009년의 우리들>을 생각해냈고, 그 곡을 – 엄마 뱃속에서였겠지만 – 함께 들었던 딸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본 브로콜리 너마저의 기사는 신보 소개를 핑계로 딸을 꼬셔 함께 콘서트를 보고 온 한 아빠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내내 가슴이 따뜻해졌다. 같이 가면 사주겠다는 장난감에 혹해 따라왔다가 공연장에서 잠이 든 딸도 귀여웠고, 그녀가 깰까 봐 박수도 제대로 치지 못했다는 그도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요즘 비가 간간히 내려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서늘했다. 아침을 일찍 먹고는 베이글 하나, 바나나 한 개 그리고, 마치 공장에서 만든 것처럼 대칭이 뛰어난 오렌지 한 개를 챙긴 후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푸른색 도화지처럼 파랬다.
날씨는 금방 더워졌지만 구름 한 점 없는데다가, 가방에는 간식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으로 빠져나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2009년의 우리들>을 들으며 한남동까지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지구 끝까지라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