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중엔 기찻삯을 빼고 10실링 정도가 있고, 그럼에도 난 잘 지내고 있소. 길버트 양과 존에게 안부를 전해주오.
최근 영국의 스완지금융조합에 1903년 8월 23일 자 소인이 찍힌 빛바랜 엽서 한 통이 도착했다고 해요. 무려 121년 만에 도착한 엽서라니… 믿어지시나요? 19세기에 활동했던 영국 동물화가 에드윈 핸리 랜시어의 순록이 있는 설경 그림이 그려진 엽서에는 에드워드 7세의 옆모습이 담긴 우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보낸 사람은 유어트 경, 받는 사람은 이 주소의 이전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리디아 데이비스 양.(호칭은 내 맘대로) 조합은 받는 이에게 이 엽서를 돌려주고 싶어 SNS 등에 수소문을 했지만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다고 해요. 하긴 121년 만에 도착한 우편물이니 보낸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닐 테니까요.
아날로그 시대에는 이렇게 누군가가 남긴 물리적인 흔적이 그 주체가 소멸된 이후에도 땅 위를 움직이고 바다를 건너 어느 순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물론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래도 그 데이터가 초인종을 누르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죠? 그런 생각을 하면 내 등을 두드리는 아날로그적 감성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가슴 아파집니다.
그 시대의 길버트 양과 존이 평안했기를, 10실링 밖에 없었던 유어트 경도 무사했기를, 그리고 직접 인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메신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을 리디아 데이비스 양도 행복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