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이명 극복 감동수기(및 제품광고)를 보게 되었고, ‘나도 혹시?’ 하며 귀를 기울였다가 그 이후부터 이명이 생겨버렸다. 스스로 찾아 듣기 시작한 이명이라니… 생각보다 둔한 나는 그 이후에도 별생각 없이 잘 지내왔는데, 얼마 전부터 이명이 조금 심해졌다. 물론 그때까지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하도 무서운 영상들을 많이 공유해 줘서 이비인후과를 찾게 되었다.


진단 전 청력테스트를 하는 과정은 단계가 많고 꽤 신경이 쓰였는데, 우선 계속 헤드폰을 써야 하는 것부터 스트레스였다. 열심히 만진 머리가 제대로 흐트러진다. 게다가 방음 부스는 외롭고 고독하다. 간호사는 나를 귀머거리로 임의 판단했는지, 매번 노친네에게 이야기하듯 큰 소리를 질러댔다.

‘검사 오른쪽 먼저 하실 거고요. 일단 소리가 들리시면 방향 상관없이 다 눌러주시면 돼요.’

오른쪽 먼저 한다고 했으면서 방향 상관없이 들릴 거라니, T인 내겐 납득이 안 되는 디렉션이다. 나는 규칙이 명확하지 않으면 게임을 안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여기서 내가 버튼을 한 번만 잘못 눌러도 특정 음역대가 난청이라고 진단 내려질 텐데 말이야. 장애가 생기느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게임을 부실한 규칙 하에서 시작하기는 싫은데… 리듬 게임이라면 자신이 있는 나지만 왠지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조이스틱의 반응성은 괜찮은 걸까? 정가운데를 눌러야 하는지 약간 가장자리를 눌러야 할지 먼저 테스트해보고 싶었지만, 이미 방음 부스에 갇혀버린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가 잘했나요?

무뚝뚝한 기차화통 간호사는 지금 정차구간인지 대답도 안 한다. 그리고는 다른 기계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이번에는 귀 뒤에 있는 뼈로도 들어보실 거예요. 바람 같은 소리가 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무시해 주시면 되세요.’

뼈로 듣는 소리는 또 뭐야. 게다가 ‘바람 같은 소리’의 정의는 뭐냐 말이다. ‘휙’하는 소리인 건지, 태풍 같은 요란한 소리인 건지 알 수가 없잖아. 한번 샘플을 들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사이버네틱한 기분으로 또 한 번 찜찜하게 엉성한 규칙의 게임을 진행하는 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야지’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중간도 아니었다. 간호사는 나를 다시 좁은 옆방에 밀어 넣더니 이마랑 미간, 귀 뒤쪽에 까끌까끌한 크림을 바르고 무언가를 잔뜩 붙인 후, 기기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규칙도 미리 안 알려주는 그녀. 혹시 이번은 임의 대처능력 혹은 아이큐 테스트 같은 건가? 그것 만큼은 남보다 낮은 점수를 받기는 싫은데… 그런데, 아앗! 갑자기 귀에서 ‘따다다’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고개 살짝 숙이시고 옆으로 쭉 돌리세요! 아니 반대쪽이요! 계속 보고 계셔야 돼요! 계속 쭉 힘을 주세요!”

어디다 힘을 주라는 거지? 배? 머리? 목? 물론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똑똑한 나는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적절한 대처였다고 생각된다. ‘아이큐 테스트는 높게 나오겠지?’ 하며 기괴한 각도로 목에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데, 슬슬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간호사는 나를 또 다른 검사실로 데려가서는 팔다리에 집게를 집으면서 이야기한다.

‘이번엔 자율 신경계 검사(스트레스 검사) 에요. 검사하는 동안 말씀하시거나 움직이시면 안 돼요. 한 3분 정도 측정합니다.’

기기를 작동시킨 후 어디론가 가버리고는 3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그녀. 마치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처럼 앉아 이 집게를 스스로 빼도 될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가 돌아왔다.

‘이제 밖에 앉아계시면 원장님이 부르실 거예요.’

다른 간호사가 불렀음. 길고 긴 검사 끝에 원장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고막이나 말소리를 알아듣는 능력, 회사는 모두 정상인데, 달팽이관 쪽에 살짝 문제가 있단다. 진단 결과는 의외로 별게 없었는데, 이명에 대한 긴 설명이 이어졌다. 영상을 보면서 설명해 주시는데 마치 유튜브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달팽이관 안에 소리를 듣는 신경세포들이 있는데, 이게 피아노 건반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신경세포가 건반이라니, 은유법은 직관적으로 둘이 같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비유가 귀에 쏙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원장님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는데, 혈액순환이 안 좋아져서 고음역대를 담당하는 ‘건반’ 몇 개가 고장 나면 우리 뇌는 그 소리를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옆에 있는 건반들을 무리하게 끌어다 쓴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뇌가 예민해지고 엉뚱한 전기가 발생하는데, 그게 바로 내 귓가에 울리는 이명의 정체라는 거다. ‘놀랍죠?’ 하시는 원장님, ‘뭐가요?’ 마음속으로 대답한 나. 다행히 내 이명 점수는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이며, 아주 경미한 수준이라 굳이 약을 먹거나 치료를 시작할 단계는 아니라고 하셨다.

‘무심함이 약이에요. 원래 우리 몸이 굉장히 시끄럽습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도 이틀 지나면 안 들리죠? 뇌에서 당연한 소리로 느끼고 컷 해버리면 끝나는 문제예요.’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가? 냉장고 소리는 나도 안 들린다. 사실 요즘 냉장고는 소리도 안 남. 어쨌든 처방도 없고, 치료도 없고, 처음 이명이 생긴 날 블로그에서 읽었던 조언만 한번 더 들었을 뿐이다.

‘이제 원인을 아셨으니 그냥 무시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조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명소리가 이전보다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는 이야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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