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

나는 머리숱이 많고 빨리 자라는 편이라 꽤 자주 이발을 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는 짧은 머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과는 달리 머리가 꽤 길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머리 자르는 걸 보고 싶어서 군대에 가는 걸 기다리실 정도였다. 그런데, 딱히 그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어버린 일이 생겼는데, 친구의 단골 헤어숍에 간 것이 그것이었다. 


친구는 머리를 해주는 분이 엄청나게 예쁘다고 했고, 그 정도면 따라갈 이유로는 충분했다. 친구와 함께 헤어숍에 들어서자 우리를 보고 미소 짓는 그녀. 아름다운 그녀는 친구를 먼저 의자에 앉히고는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친구는 참선하는 비구니처럼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있었고, 그녀는 친구의 주위를 돌며 신들린 듯 가위를 놀렸다. 어느새 친구의 머리는 겸손히 깎여있었고, 그녀는 비구니가 되어버린 친구를 일으킨 후에 – 까닥까닥 – 손가락으로 나를 불렀다.

”이리 와 앉아.”

반말을 하는 그녀.

”네”

하지만, 존댓말을 하는 예의 바른 나.

”음, 어떤 스타일이 좋아?”

딱히 생각했던 스타일이 없어 뭐라고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어울리게 해 줄게!”

들을 생각도 안 했다는 듯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녀. 

“네”

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잘 어울린다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먼저 명확히 이야기해보시죠? 대체 무엇과 어울린다는 겁니까? 같이 온 친구와 잘 어울린다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입은 옷과? 설마 다시 머리를 자르러 올 때까지 앉을 일도 없는 이 의자와 어울리게 자르는 걸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사양하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아니, 잘 들어! 길이는 지금 상태를 어느 정도 유지한 채로 지저분한 부분들을 다듬어! 앞머리는 눈썹을 지나 양 눈의 가장자리로 비껴 떨어질 수 있도록 – 눈이 찔리면 아프니까 – 해주고, 절대 가르마가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할 거야! 마지막으로, 남들이 봤을 때 바로 머리를 자르고 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도록 해주길 바라! 확실히 이해가 됐다면 눈을 두 번 깜빡거리도록!’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말던 그녀는 친구의 머리를 자를 때처럼 미친 듯이 가위를 놀렸다. 주변에 머리가 흐드러진 벚꽃이 봄바람에 날리듯 떨어졌다. 불안했다. 맘에 들었던 길이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작업이 끝난 후 거울을 들여다본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안에는 독립군에 참여하기 전 의지를 다지기 위해 삭발을 한 학생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랬던 그 모습은 그녀의 한마디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어머, 구정중학교 아이 같네. 호호호

그녀는 더 이상 예쁘지 않았고, 나는 모교도 아닌 그 중학교 이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옆에 겸손하게 앉아있던 내 친구도 그녀와 함께 웃기 시작했는데, 그것만큼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자기는 비구니인 주제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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