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다 끝나고 귀국할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었다. 나는 바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애는 짧게 오라고 대답했다. 그는 마치 기둥에 묶어놓은 것처럼 시간이 안 가던 고등학교 삼학년 때, 늘 맨 뒷자리에서 같이 떠들던 내 소중한 친구였다.
‘나는 문 닫고 들어갈 거야. 너는 네 앞에서 문이 닫히겠지.’
이 실없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다행히 우리는 모두 문 닫고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내가 늦게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를 하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어바인에 살고 있는 이 친구였다. 꼭 만나야지. LA는 – 여기 말로는 –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차로는 여덟 시간밖에 안 걸리는 네이버후드라니까. 하지만 졸업을 할 때까지 얼굴 한번 보지 못했었다.
공항에 내려서는 통화를 하며 그가 말하는 장소를 눈으로 찾았다. 비슷한 곳 근처에 주차된 SUV 열린 창으로 이쪽을 보며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내 친구. 웃을 때 눈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철민이가 맞다. 사실 안 웃을 때도 잘 안 보임.
빨리 타. 조슈아트리에 갈 거야
친구도 음악을 좋아했었나? 그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게 조슈아트리는 U2다. U2의 가장 유명한 앨범인 조슈아트리를 듣고 또 들었으니까. 그 앨범 재킷에서 봤던 그 기괴한 다육식물은 늘 내 상상 속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 데려가달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게 국립공원의 이름이란 건 몰랐으니까. 어쨌든 그는 두 시간이 넘게 사막을 달려 나를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 데려갔고, 그곳은 그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조슈아트리로 가득했다. 쓸쓸한 듯하면서도 가득 차있는 듯한 공간. 보노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과 함께 그 사람이 없는 상실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약한 화자를 떠올리며 ‘With or Without You’를 작곡했고, 우리는 시답잖은 고등학교 때 농담을 하느라 정신없었다.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and you give
and you give yourself away
with or without you

다시 차로 돌아오니 주변이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 그때 태어나서 그렇게 촘촘하고 많은 별은 처음 봤던 것 같다. 그 친구도, 나도 한참 동안 말없이 하늘만 쳐다봤다. 이 정도면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이어서 한 시간은 내리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와, 넌 이런 거 매일 보는구나?’
‘나도 처음 보는데?’
‘넌 여기 살잖아.’
‘여기 멀어. 집에서.’
‘가끔 와 그럼.’
‘내가 너처럼 한가한 줄 아니?’
그렇게 바쁜데 나를 조슈아트리에 데리고 와준 거다. 서울에 와서 또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문득 그때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던 별무리가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던 그 친구 얼굴도 말이다. 그러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U2의 ‘With or Without You’를 들으며 그때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과 친구와 끊임없이 지껄여댔던 유치한 농담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