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짜파게티를 남들 못지않게 끓여봤을 거다. 먹는 게 그렇게 큰 관심사는 아니어서 내가 끓인 짜파게티 맛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최근 연속으로 한두 번 – 기억에 남을 정도로 – 맛대가리 없게 끓이게 되면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심지어는 트윗까지 올렸다.
짜파게티가 갑자기 맛이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 ‘농심 짜파게티, 40년간 91억 개 판매. 누적 매출액 4조 코앞’이라는 4월에 작성된 기사가 있을 정도로 여전히 잘 팔리고 있는 거다. 만약 맛이 없어졌다면 이렇게 승승장구할 리가 없잖아?
나는 이 이유를 분석해보고 싶어졌다. 짜파게티를 끓일 때 나의 판단과 행동이 가장 크게 반영되는 부분이 어디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재료도 제공되고 어느 정도는 매뉴얼대로 끓이고 있으니 그런 영역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선 객관적으로 디테일하게 과정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소홀히 하면 죽을 때까지 맛없는 짜파게티를 먹어야 한다. ‘평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 왠지 조금 긴장하게 된다. ‘며칠 콧물이 날 거예요’와 ‘평생 더러운 콧물이 코에서 인중으로 줄줄 흘러내립겁니다.’는 그 무게가 너무 다르니까.
우선 차근차근 살펴보자.
1. 라면을 찬장에서 꺼낸다.
2. 봉지를 뜯는다.
3. 면을 꺼낸다.
4. 냄비에 물을 계량하여 넣는다.
5. 불을 켠다.
6. (물이 끓으면) 면과 건더기 수프를 넣는다.
7. 기다린다.
8. 불을 끈다.
9. 남은 물을 버린다.
10. 짜장수프와 올리브유(맞나?)를 넣는다.
11. 비빈다.
단계가 복잡하지는 않기 때문에 분석이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1, 2, 3, 6, 7, 10, 11번은 일반 사람이라면 아예 단계에 집어넣지 않았을지도 모를 영역으로 – 나는 너무나 치밀해서 나도 모르게 집어넣었음 – 짜파게티의 맛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정해도 좋을 것 같다. 라면을 책꽂이에 두는 사람도 있을 테니 ‘찬장’을 ‘짜파게티를 일반적으로 보관하는 곳’으로 일반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패스. 특별한 믿음이 있으신 분들은 봉지를 뜯거나 면을 넣거나 끓기를 기다릴 때 주문을 –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런 거 – 외운다던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분석은 과학적 탐구정신을 기반으로 논리적 접근만을 수행하기로 한다.
4번, 물을 계량하는 과정은 라면이라면 꽤 중요할 수도 있지만, 짜파게티의 경우 끓는 물은 단순하게 면을 익히는 역할만 수행하게 된다. 면을 익히고 나면 나머지는 버리기 때문에, 라면처럼 기화氣化되어 날아갈 물의 양을 예측하며 수프와의 황금비를 계산해 낼 필요가 없다는 거다. 5, 8번의 경우 불의 강도나 면을 익히는 시간을 좌우하게 되므로 면의 식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짜파게티의 경우 면이 굵기도 하고 국물 안에서 계속 불지 않기 때문에 너무 덜 익지만 않으면 맛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9번. 수프를 넣고 비비기 전에 물을 어느 정도 남기느냐만 남았다.
이거다. 유레카! 더 이상 상세히 들어다 볼 필요도 없었다. 뒤돌아보면 물을 버릴 때 늘 애매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냄비를 기울일 때 움푹한 부분과 면 사이에 대체 얼마 정도의 물이 있는 건지 가늠이 안 됐었다. 물을 너무 과하게 버리면 수프로 비빌 때 너무 뻑뻑해질 것 같으니까. 배가 고팠던 것뿐인데 짜파게티를 먹다가 목이 막혀 죽는 건 너무 과하잖아. 그래서 졸졸 소심하게 물을 꽤 오래 버렸다. 무쇠 냄비가 무거워서 팔이 아프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잔치국수가락 같은 짜파게티도 싫어서 대충 면 위로 물이 보이지 않게 되면 버리는 것을 멈췄다. 이제야 생각나는데 최근 모두 짜장수프를 넣고 비비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도대체 이 냄비는 화수분이야? 물이 왜 계속 솟아나는거지?’
덕분에 장마철 물구덩이처럼 발을 대면 신발이 젖을 만큼 찰박찰박한 짜파게티가 만들어졌던 거다. 물기가 있는 짜파게티는 무조건 맛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짜파게티를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끓이는 방법이 뭐냐고요? 그것은 물을 버리는 양을 가늠하기 어려우니, 아예 물을 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후 몇 번의 실험을 거쳐 면만 적당하게 익히고 수프와 잘 섞일 정도의 물만 남게 되는 물의 양을 탐구해봤는데, 그 결과는
320미리리터의 물을 넣고 끓이는 것
면을 넣고 4분 30초가 지나면 불을 끄지 않은 상태에서 짜장수프를 넣자. 그리고, 면이 짜장으로 반짝반짝 코팅되고 물이 거의 사라질 때까지 비빈다. 물기가 대충 사라지면 불을 끄고 먹어라.
내 말대로 하면 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파게티를 먹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