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의 기준

출근 전 뉴스를 보고 있는데 오늘 아침은 영하 9도로 엄청나게 춥다고 했다. 이쯤 되면,

‘춥다는 것의 기준이 뭐지?’

하고 다시 한번 궁금해진다.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는 겨울에도 영상 10도 이하로는 잘 안 내려갔다. 그 정도라면 서울에서는 셔츠 위에 아우터를 입을까 말까 고민할 정도의 딱 기분 좋은 봄가을 날씨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아침 집을 나설 때 꽤 두꺼운 코트를 입었다. 물론 낮이 되면 기온이 올라가 코트를 벗어 들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다시 코트 안쪽에 몸을 욱여넣었다.
서울에 돌아온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기억 속의 샌프란시스코 겨울은 냉랭한 정원의 코르크참나무 뒤에 숨어있는 음흉한 연쇄살인범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 서울의 겨울은 – 샌프란시스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 극한 체험의 도시잖아. 그 명성에 걸맞게 삼 주 전쯤 뉴스에서는 ‘올해 최고의 한파, 영하 15도의 한반도’라며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 예보를 보고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는데, 생각보다는 춥지 않았다. ‘영하 15도가 영상 10도보다 못하잖아?’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조금 실망했었던 기억이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마치 지구 종말을 예고하듯 ‘출근하다가 얼어 죽을 수 있는 날씨’라고 떠들어 댔고, 리포터는 길거리에서 에스키모 복장을 한 채로 ‘이렇게 입어도 너무 추워 말이 제대로 안 나올 정도입니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나는 다시 혼란스러워졌는데, 그래봤자 기온은 영하 9도였기 때문이다. 리포터의 반응 만으로는 영하 15도였던 삼주 전 보다 오늘이 더 추울 것만 같은데, 그게 말이 되나? 물론 오늘 기삿거리가 부족해서 날씨에 힘을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집을 나서는데 그 생각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리포터는 정말 추웠던 거다. 분명히 말은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영하 9도는 삼주 전 영하 15도보다 더 추웠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데, 이런 문장을 만났다.

나는 추위와 그 못지않은 긴장으로 떨었다. 기온은 12월치고는 놀라울 만치 따뜻했고 빙점보다 한참 높았지만, 체감온도는 야쿠츠크(러시아 동아시아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와 대적할 만했다.

따뜻하다는 건지 춥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 – 핫팩 붙이고 냉탕에 들어가는 듯한 표현이긴 하지만, 어떤 상황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긴 한다. 그건 내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샌프란시스코의 겨울에 한기를 느꼈던 이유와 같을 것이다. 
날씨를 느낄 때는 온도 외에도 다른 여러 정성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절대적 객관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된다.

물론 영상零上인 상태에서 야쿠츠크와 비교한 건 너무 했다고 생각하는데(분명히 작가는 야쿠츠크의 날씨를 경험한 적은 없을 것임), 어쨌든 그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인 것이다.

지하철에서 다시 바깥으로 나오니 다시 찬 바람에 온몸이 수축되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지금 날씨라면 야쿠츠크와 대적할 만할 것 같은데?’

야쿠츠크에 가보지도 못했으면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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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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