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

인류는 작년 12월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 이후 꽤 오랫동안 기존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다시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이 기간 동안 출현하게 된 새로운 기득권들의 방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금 인류 존속의 문제 하에서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정책 혹은 삶의 방식들이 – 그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 ‘뉴 노멀 New Normal’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가 파이낸셜타임스에 ‘The world after coronavirus’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가장 근본적인 화두를 꺼내어들며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를 예측했죠. 그가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세계의 움직임 속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바로 ‘전체주의적 감시 Totalitarian Surveillance’와 ‘민족주의적 고립 Nationalist Isolation’이 그것입니다.

인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생존의 위협이라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시민들은 빅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전체 국가를 통치하는 독재자)적 통치에 반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기대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정부가 입국자를 제한해주기를 바라고, 시민의 이동을 자제시켜주기를 기대하며, 자가 격리자들에게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여 그들을 감시해주길 원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컨트롤 가능한 최소 연대단위 집단의 이기주의도 팽배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구시대적이거나 교양 없다고 생각되었던 민족주의나 인종차별이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유럽연합 EU 회원국들이 이탈리아를 외면하고, 스페인이 중국에서 구매한 인공호흡기를 경유지인 터키에서 터키 당국이 압수하는 일도 있었죠. 바야흐로 대해적의 시대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전체주의적인 감시 대신 시민 역량 강화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며, 민족주의적인 고립보다는 글로벌 연대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뉴스를 통한 실제 움직임을 보게 되면 그 반대방향의 움직임이 더 커 보입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만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몇 퍼센트의 시민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야 할까요? ‘글로벌 경제 위기’라면 문제 해결의 프레임웍을 제시할 수 있는 소수의 전문가들 만으로도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팬데믹(질병의 범세계적 유행) 상황은 그런 식으로만은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시민 하나하나가 손을 깨끗하게 씻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고, 병의 징조가 보이면 스스로를 격리해야만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현 상황에서 보면 기존에 선진국이라 자부했던 유럽이나 미국도 모든 국민의 역량이나 의식 수준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 엘리트들의 그늘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실체가 드러났던 거죠. 그런 상황 하에서 정치인들은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하나같이 강력한 정책들을 들고 나오고 있으며, 그것들이 제대로 시행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 여러 신 기술 Emerging Technology들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 한번 올라간 커피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듯이 – 그런 프레임웍은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겠죠.

한걸음 뒤에서 살펴보면,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접하게 될 문제들을 미리 조우遭逢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나 뉴 테크놀로지의 대두擡頭로 생산은 늘어남에도 줄어드는 일자리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부의 재분배라던가, 가상현실이나 다른 기술을 융합한 비대면 혹은 원격 비즈니스의 활성화 같은 것들을 이렇게 빨리 바로 마주하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겁니다. 그렇게 새로운 변화들이 적절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만큼 많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결정되고 또 이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물론 지금 발생하고 있는 새로운 변화나 프레임웍들이 인류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해악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잘못된 선택을 한 두 개 해온 것도 아닌 것처럼, 지속적으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도 사실이니까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전쟁보다도 더 큰 전인류적 변화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모든 선택과 결정을 할 때 우리는 인류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조금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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