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놀기의 왕인 후배와 다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오늘 화제는 요즘 그다지 재미있는 것이 없고 딱히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점점 더 오래 살게 되는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 맞아 나이가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경험이 반복되니까 더 지겨운 것 같아.
‘그런데, 저는 오래 살게 될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집안이 대체로 장수하거든요.’
– 그래?
부러웠다.
‘할아버지가 93세 신데요. 너무 천천히 걸으셔서 지하철에 오르시기 전에 문이 닫힐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예요. 하지만, 그것 말고는 엄청 정정하시거든요.’
– 하하. 오래 산다 해도 뭔가 재미있는 것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게 없어요.’
– 여행을 자주 간다던가…
‘저는 대체 여행을 왜 가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이해가 안 가는 건 호캉스(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대신 근처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에요. 솔직히 호텔방에서 가만히 있는 게 집에 있는 거랑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그건 그렇다. 나도 여행을 나서는 길에, 집에 돌아와 내 방에 눕는 상상을 한다.
‘주말에 아는 사람 결혼식에라도 가게 되면 끝나자마자 무조건 집으로 바로 돌아오거든요. 빨리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고 싶어서 말에요.’
– 그런 기분 잘 알지. 나도 운동하려고 자전거를 타도 멀리는 안 가. 언제 집에 들어가고 싶어 질지 모르잖아. 멀리 가면 그만큼 다시 돌아오는 길이 지옥이니까. 그래서 나는 집 주변에서 원을 그리며 자전거를 타. 그러면 어느 상황에서도 반지름만큼만 돌아오면 집이니까.
‘오. 너무 수학적인데요?’
지난번 콘텐츠 소비 대결 때는 완패였지만 오늘은 느낌이 좋다.
‘저는 일 할 때도 상당히 빨리 하는 편이에요. 천천히 대충 해본 적이 없어요.’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부지런한 성격 자랑이라… 하지만, 오늘만큼은 질 수 없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던 경험을 뒤졌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 일을 빨리 해버리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거든요.’
이런, 주제가 바뀐 것이 아니었어! 빨리 대처하지 못하면 오늘도 이기기 힘들지 모른다. 재빨리 만회할만한 다른 게으른 일화를 이야기하려 하는데, 그녀가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저는 제 인생이 진흙탕이 된다면, 제가 게을러서 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게으른 것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