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은 24년 5월에 이미 JTBC에서 방송된 드라마였습니다만,
(어쭈)
저는 며칠 전 유튜브를 통해 해당 드라마의 정보를 접하게 되었어요.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현대인의 질병에 의해 그 능력을 잃어버린 가족과 그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인 사기꾼 여자의 좌충우돌 성장기’정도로 설명되는 이 드라마는 ‘내성적인 보스’와 ‘연애 말고 결혼’을 집필한 주화미작가의 작품입니다. 저는 둘 다 본 적은 없고요. 이름도 솔직히 처음 들어봤네요.(죄송) 그런데, 우선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이 드라마, 꽤 괜찮습니다
음악도 너무 좋아서 그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는데, 올해 중순 정재형의 유튜브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알 거예요. 드라마 음악을 하느라 힘들었네, 성장했네 하는 이야기를 종종 했던 거. 네, 그게 바로 이 드라마예요. 정재형답게 O.S.T가 전반적으로 클래시컬하고 고급져서 따로 듣기에도 부족함이 없어요. 그래서 코딩할 때, 책 읽을 때, 길을 걸을 때 종종 앨범 전체를 돌려 듣곤 했다니까요?
원래 히어로 하면 올마이티의 전투력을 가진 능력자잖아요?
주먹으로 바위를 부수고,
눈에서는 빔이 나가고,
근육이 불룩불룩.
머저리 같은 악의 무리가 떼로 몰려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다 뭉개버리는 영웅. 하지만, 언제부턴가 일반사람처럼 평범한 가운데 – 크게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 남다른 능력 한 개만 달랑 가지고 있는 히어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등장씬부터 ‘에게 저게 뭐야?’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히어로들. 조금은 불쌍하고, 연민이 생기고, 옆집 사람 같은 히어로 중의 미숙아들. 천재 사이의 수재 같은 느낌이랄까? 수재는 정말… 아무나 수재 아닌가요? 넷플릭스에 ‘엄브렐라 아카데미’라는 히어로물이 있는데, 그 주인공들이 딱 그래요.(저는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게 봤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그 드라마가 오버랩되더라고요.
행복했던 과거로 갈 수 있는 복귀주,
예지몽으로 미래를 보는 복만흠,
하늘을 나는 복동희,
눈을 통해 독심술이 가능한 복이나,
히어로라기엔 영… 하지만, 이 드라마는 판타지의 탈을 쓴 로맨스 치고는 판타지의 구성이 논리적으로 꽤 탄탄합니다. 로맨스물은 초반에는 재미있다가도 주인공들이 연결되는 후반부가 너무 뻔해서 재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는 판타지적 소재로 스토리의 다이너미즘을 극대화시켜서 로맨스물임에도 마지막 회까지 관객과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합니다.(12부작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 대단) 명대사가 많은 건 아니지만, 과하지 않은 감동포인트도 나름 적절했고요.
보통 타임슬립물은 과거 시간선 여기저기를 건드리며 미래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신없는 구성이 대부분인데요. 그렇게 복잡한 진행 속에서 – 치밀하지 못한 – 논리적 모순을 보게 되면 저 같은 INTP은 참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과거를 건드릴 수 조차 없고(아주 일부는 그렇지 않지만), 거기에 어떤 경우에도 미래가 변경될 수 없다는 전제까지 두고 있기 때문에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마지막 12회 제외)
배우 장기용은 젊은 소지섭 같은 느낌인데, 알고 보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를 괴롭히던 그 싹수없는 깡패 놈이었네요.(갑자기 열받음) 수더분하게 잘 생긴 데다가 목소리도 좋습니다. 뭔가 단점이 있겠죠 뭐. 천우희는 ‘멜로가 체질’ 때도 느꼈지만 참 묘합니다. 로코에 최적화된 연기인데 그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할까? 자세히 뜯어보면 예쁜 것 같지는 않은데 예뻐 보이고, 동안은 아닌데 어려 보이고 말이죠. 갑자기 ‘사이에서’라는 영화에서 통통 튀던 그녀의 연기가 떠오르네요. 장기용의 딸, 복이나 역할을 했던 박소이의 연기도 참 좋았고요.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가 큰 히트를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 가슴이 아프네요. 혹시 아직까지 못 보신 분들이 계신다면 – 대부분은 못 보셨을 것 같기도 한데 – 넷플릭스에서 감상이 가능하니 한번 저를 믿고 정주행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