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싱어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원조 가수와 모창 가수가 모두 작은 방에 들어가 가려진 채로 원조 가수의 곡을 한두 소절씩 부르고, 관객들은 그중 원조 가수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방송이다. 한 번쯤 보신 적 있으시겠죠? 이 프로가 10년 차라는 건 모르셨겠지만… 물론 나도 몰랐다. 이 프로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원조 가수를 잘 아는 팬이나 동료들이 자신만의 지식이나 노하우를 근거로 원조 가수가 들어있는 게 확실하다고 가리키는 방에서 모창 가수가 튀어나오는 황당한 장면을 마주하는 것.


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규현이 출연하는 에피소드를 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를 찾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네 번의 경연 중 한 번도 맞추지 못하고 말았는데 – 그의 엄청난 팬은 아니지만 – 자존심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체 이유가 뭘까? 

그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방송에서 수백 번 부르면서 더해진 ‘쪼’에 속은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좁은 방 안에서 자신과 비슷한 목소리들이 한 소절 한 소절 밟아 오는 상황이니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겠지. 물론 방송에 나오는 그의 지인들도 대부분 그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이후 얼굴을 드러내며 나머지 소절을 부를 때에는 늘 원조 가수가 압도적으로 잘 부른다는 거다. 그게 관객 앞에 선 원조 가수의 본업 정신 발현 때문인지, 목소리와 외모의 시너지인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투표 끝나고 나서 잘 부르면 뭐하나?

이때 까지 그는 아직 자신 있었을까?(나는 5번은 아니라고 확신 했었음)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모창 가수들은 단순히 노래를 똑같이 부르는 것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의 스토리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들이 내어놓는 음악에 위로받거나 인생의 전환을 맞이했던 경험들은 꽤 뭉클한데, 원조 가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엄청난 선물이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3라운드 즈음 엄청난 감정의 폭풍 속에 서있게 되는데, 그날 규현도 팬들의 진심을 대하는 행복감, 자신이 잘 해왔다는 안도감, 탈락했다는 수치심, 자신을 꺾은 모창 가수에 대한 분노(농담) 속에서 표정이 변검술사(중국 쓰촨성 지방의 전통 가면극을 하는 배우. 가면에 손을 대지 않고도 얼굴을 순식간에 계속 바꾸는 것이 특징)의 얼굴처럼 시시각각 변했다. 

그때 꽤 재미있게 봐서 다음 에피소드인 최정훈(잔나비 보컬) 편도 본방사수로 감상했는데, 모창자들이 락페나 공연에 최적화된 그룹의 팬들이라 그런지 라이선스 음반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공연 때의 창법이나 분위기를 그대로 복원하는 바람에 더 어려웠다. 물론 나는 여전히 한 번도 맞추지 못했는데, 잔나비의 열성팬인 내 친구도 두 번 밖에 맞추지 못했다고 한다. 

열성팬 치고는 저조한 성적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건 그렇고, 이 방송에서 알게 된 규현의 ‘내 마음이 움찔했던 순간’이란 곡이 너무 좋아서 계속 돌려 듣게 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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