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옷의 유효기간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며칠 전에도 비가 왔지만 분명히 그때와는 달랐다. 집을 나와 빗속을 걸으며 올해는 더 이상 더운 날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날씨는 예측 불가능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도, 더 이상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경계는 늘 명확했다. 디지털시계가 오전 열한 시 오십구 분에서 오후 열두 시로 바뀌듯

딸깍

하고 바뀌어 버린다.그런 건 머릿속에 플래시가 터지는 것처럼 그냥 알게 된다. ‘이제 여름은 끝났구나.’ 하게 되는 것. 내년 봄이 올 때까지 외부에서 온기를 느끼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겠지. 오늘부터는 더 이상 

반팔티만 입고 나다니거나, 
햇살이 작렬하는 해변에 누워있거나, 
찬물 만으로 샤워를 할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한번 더 머릿속에서 ‘딸깍’ 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실내 보일러를 가동하고, 
자동차의 히터를 디폴트로 켜고, 
걸을 때 주머니 속 핫팩을 쥐어야 하는 계절이 온다.

그러기 전에 – 약간 애매한 날씨라도 – 기민하게 움직이며 드라이클리닝 해두었던 트렌치코트나 애매한 두께의 가죽점퍼를 부지런히 입어 줄 필요가 있다. ‘조금만 더 서늘해지면…’ 하고 옷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날씨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주변에 겨울이 성금 다가와 있을 테니 말이다.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란 말이지.

가을 옷은 늘 꽃잎이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지는 시간만큼 입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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