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하차의 매력: 내가 완주하지 못한 콘텐츠들

책이나 드라마를 시작하면 중간에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보는 편이신가요? 나는 끝까지 읽는 책 보다 중간에 덮는 책이, 시즌 마지막 회를 본 드라마보다 엔딩을 모른 채로 덮어둔 드라마가 훨씬 더 많다. 물론 어렸을 때는 책을 접할 수 있는 방법도 한정되어 있었고 시간도 훨씬 많았어서 그런지 아무리 재미없어도 대부분 끝까지 다 읽었다. 어쨌든 내 시간을 썼기 때문에, 칭찬만큼 비판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진데 반해 시간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조금 읽다가 – 혹은 조금 보다가 –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접어버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덕분에 중도하차 한 콘텐츠는 누구에게 뭐라고도 이야기 못하고 의식 뒤쪽에, 나만의 태그를 달아 차곡차곡 쌓아둘 수밖에 없다. (궁금하지 않겠지만) 드라마들 중 그것들을 조금 꺼내어 보자면, 

SKY 캐슬: 시험 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1편을 보는데 속이 답답해져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음.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감옥 안에서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바람에 옷들이 너무 다 똑같아서 지루해짐.

이태원 클라쓰: 김다미 단발이 너무 안 어울려서 중도에 하차.

퀸스 갬빗: 애니아 테일러 조이는 예뻤지만, 체스를 몰라서 관심이 안 생김.

소셜 딜레마: 다 아는 내용일 것 같음.

라이프: 정의의 인물(비밀의 숲, 황시목)이었던 조승우가 나쁜 놈으로 나와(끝까지 안 봐서 아닐 수도 있음) 흥미가 떨어짐.

슬기로운 의사생활: 매 에피소드가 곡팔이 같아 꺼려짐.

도깨비: 김고은은 귀엽지만, 이동욱의 갓(혹은 모자)이 너무 싫음.

지정 생존자: 시즌 1을 재미있게 봤지만, ‘24시’처럼 끝도 없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차.

브레이킹 배드: 엄청난 추천을 받았는데, 처음 버스 타고 사막을 달리는 부분만 20번 넘게 봄.

하나하나 적다 보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 많아서 놀라고 말았다. 콘텐츠들을 보면 대부분 추천작 들이라 더 애매하지만,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니까.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일본 소설가의 작품 중에 ‘제노사이드’라는 소설도 – 추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 도입부의 전략회의만 열 번 이상 읽었던 것 같다. 다시 시도할 때마다 처음부터 읽다 보니, 그 전략회의 부분은 아직도 마치 영화를 보듯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은 얼마 전 추천받은 지 5년 만에 드디어 읽어버리고 말았는데, 꽤 재미있었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나는 음악도 도입부만 듣고 더 이상 듣지 않은 곡이 꽤 있다. 이하이의 ‘홀로’가 그런 곡들 중 하나인데, 도입부가 마음에 안 들어 넘겨 버리는 바람에 아직도 클라이맥스를 모른다. 물론 사비나 앤 드론즈의 ‘Where Are You’처럼 도입부의 첫숨 보컬만 듣고 플레이리스트에 집어넣은 곡도 있긴 하다.

실컷 떠들긴 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이유로 위에 언급한 모든 콘텐츠 생산과 관련된 분들께 사과하고 싶어 졌다.

죄송해요. 언젠가는 꼭 볼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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