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앤 테이스팅 룸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밴쿠버, 시드니는 – 서로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 서로 데칼코마니 같아서, 나같이 둔한 사람은 안대를 씌워 데려가 중앙에 떨어뜨려 놓으면 어디가 어딘지 제대로 구분해내기 힘들 정도다. 멋대가리 없이 비슷비슷한 건물들 때문일 수도 있고, 전력선에 더듬이를 걸고 다니는 전기 버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엄청나게 비슷하다. 그중 시애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도시여서,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 몇 번 놀러 갔었다. 물론 아는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러고 보면 난 참 혼자서도 잘 논다. 

시애틀은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미국 영토지만 – 거리가 더 가까워서 그런지 – 도시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밴쿠버와 더 비슷하다. 그 외곽도 역시 샌프란시스코보다는 시드니 쪽에 가깝다. 내가 살던 때에는 시애틀이 도시 확장 진행 중이어서 길을 걸어 다니는 게 정말 불편했다. 조금 걷다 보면 도로가 막혀있고, 건물들도 출입 제한이 빈번했다. 지금은 좀 괜찮아졌을까?

개인적으로 시애틀 하면 먼저 너바나 Nirvana나 펄잼 Pearl Jam 같은 그런지 밴드들이 떠오른다. 이곳은 얼터너티브 음악 성지 같은 장소니까. 커트 코베인이 자살을 한 지도 30년이 다 되어가니 정말 한참 전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신대륙 국가들은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리적인 기간의 열세를 구성원들의 관심과 자존감으로 극복한다고 할까? 스페이스 니들 옆에 당당하게 서있는, 50년도 안된 음악 역사의 기록 장소 EMP(Experience Music Project) 박물관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쨌든 기억할만한 과거는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힘이 되어 주는 거니까. 
시애틀이라면 현빈 탕웨이 주연의 만추라는 영화도 생각나는데, 내내 쓸쓸했던 분위기가 계속 가슴에 남아있다. 그리고, 분명히 그것에는 시애틀이라는 도시가 톡톡하게 한몫했었다. 


사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또 다른 시애틀의 명물 스타벅스. 스타벅스 매장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긴 하지만, 유독 서울에는 매 블록 건너마다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그에 비할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곳 시애틀도 거리거리마다 스타벅스가 넘쳐난다.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도시이니 그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서울이 이상한 거죠) 그런 도시에 스타벅스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앤 테이스팅 룸’을 오픈했다.

이해가 쉽도록 설명해보자면, 인형공장에서 봉제 인형을 파는 식이랄까? 이곳에서는 원두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모든 과정을 확인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커다란 기계에서 원두들이 빙빙 돌다가 갑자기 쏟아져 내린 후 파이프를 타고 다른 기계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평화스러운 커피 생산과정은 리셋되어 버리고 만다. 넓은 커피 농장에서 커피를 딴 후 한가롭게 평상에서 그것을 말리는 모습 따위는 없었다. 이곳의 목표가 커피 생산과정으로 고객을 압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100% 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 철강공장에서 차르의 종* 만한 철 그릇에 빨간 쇳물을 쏟아붓는 장면을 봤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 나름대로 감탄하고 말았다. 

커피를 주문하면 바 끝쪽에서 바리스타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며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데, 커피의 종류도 일반 스타벅스 매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다. 나는 커피에 대한 지식도 없고 맛도 잘 모르기 때문에 ‘좀 시큼한데?’ 정도의 느낌뿐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원더풀’, ‘어썸’을 외쳐대고 있었으니 분명히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기까지 왔으니 ‘어썸’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경험적으로 외국인들의 감탄은 100% 신뢰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큰 공장이 문을 닫으면 지역경제에 타격이 꽤 클 것 같기 때문이다.

구석에는 커피 관련 서적들을 전시해놓은 도서관도 있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어서, 작은 기프트샵을 구경하는 느낌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물건 구매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도 에스프레소 잔을 들었다 놨다 했을 정도니 쇼핑이 취미인 사람들은 조심하기 바란다. 

‘박물관도 아니고 커피숍을 강력추천이래?’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소신 있게 추천해보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앤 테이스팅 룸’이다.


  1. 차르의 종*: 높이가 6.14m이고 하부의 지름이 6.6m인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청동 종이다. 울릴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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