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와 콘텐츠의 상관관계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보다 멜로디나 연주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꽤 좋아하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담고 있는 메시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꽤 많은가 보다. 물론 그런 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가끔 친구에게 음악을 공유했을 때

요즘 힘든 일 있나 보네?

하고 반응하면 어떻게 응대를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한 때 기분전환을 위해 신나는 Foster the People의 ‘Pumped Up Kicks’를 자주 들었었는데, 그것에 기겁을 했던 친구도 있었다. 물론 가사의 내용에 신났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해두고… 아론 트베잇의 ‘I’m alive’도 그런 곡 중 하나로, 듣기에는 신나지만 가사는 좀 으스스하다. 어쨌든 가사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곡을 추천할 때 가사도 같이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귀찮아져서 추천이고 뭐고 그냥 혼자만 듣고 싶어 진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콘텐츠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콘텐츠만의 스토리가 필요하다. 정보의 확산에 콘텐츠의 퀄리티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퀄리티는 소비자가 그것을 접하게 될 때 그 힘을 발휘하지만, 그 콘텐츠 앞까지 소비자를 끌고 가는 것은 스토리다. 비교적 전달이 쉬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는 소비자를 해당 콘텐츠의 전파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이런 작업은 예술적 콘텐츠뿐만 아니라 기업의 제품 릴리즈나 조직의 인사발령 등 모든 것에 통용되는 기술로, 생명이 없는 오브젝트나 행위가 직관적이면서 감성적으로 대상에게 전이되도록 돕는다. 

음악에 있어서 가사는 해당 콘텐츠의 스토리를 빌드업해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사에는 마치 드라마처럼 사연이 있고, 상황이 있으며, 주인공이 존재한다. 그 외에 그 곡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소설의 액자식 구성처럼 콘텐츠의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스토리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는데, 김광진이 마법의 성을 작곡하게 된 일화가 그렇다. 그는 ‘페르시아 왕자’라는 게임을 즐기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 개인적으로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 그렇게 서정적인 음악에 이런 비화라니 왠지 실망하게 되어 버렸다고 할까? 그 이후 음악을 들으면 김광진이 쭈그리고 앉아 그 게임을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그다지 잘할 것 같지도 않음)
임창정의 ‘소주 한잔’은 소주를 마시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듣고 나니 조금 심심했고, 음악도 곧 심심해져 버렸다.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 음악에 스토리나 비화 같은 것은 오히려 안 좋은 선택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스토리 기법을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면 전문 작가를 고용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크렌배리스의 히트곡인 ‘Linger’의 가사는 원래 초대 싱어였던 나이올 퀸이 썼다. 하지만, 그 이후 보컬을 맡게 된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자신이 사귀었던 군인과의 과거를 회상하며 다시 고쳐 썼고, 이 곡은 크게 성공했다. 만약 최초 가사를 고집했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해지는데, 어쨌든 가사가 꽤 지질하니 멜로디가 로맨틱하다고 이 곡을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 일이 없길 바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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