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음악을 좋아하지만 한 번도 록페스티벌에 가본 적이 없다. 산만하고, 정신없고, 덥고, 먼지도 많고, 집에서도 머니까. 어렸을 때는 밴드를 하고, 음악도 락만 들었던 사람 치고는 성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기호가 아닌 성격 탓이니 양해를 바라고… 그러던 중 얼마 전 회사에 음악을 나만큼 좋아하는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늘이에요.’

오늘이 무슨 날이었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티켓 오픈하는 날이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개최를 못하다가 작년부터 다시 시작했고, 역대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올해 티켓을 오픈한다. 도대체 이런 정보는 어떻게 얻는 걸까? 

‘음악을 좋아한다면서 이런 정보를 모르는 게 더 이상한데요?’

그렇다고 한다. 어쨌든 경쟁이 심하다고 하니 도와주고 싶어서 함께 티켓팅에 참여했는데 보기 좋게 둘 다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약간 오른 가격으로 두 번째 오픈을 했고, 한번 실패해서 그런지 꽤 긴장하면서 시도했는데 구매에 성공하고 말았다. 물론 그 친구도 성공했다. 알고 보니 두 번째 오픈은 실패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꽤 많은 양을 오픈했음)


그렇게 처음 참여하게 된 페스티벌 관련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려 보자면, 우선 너무너무 덥다는 것.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 햇빛이 작렬하는 대낮에 그것을 마주하며 반나절을 서있기는 – 군대를 제외하고는 –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늘도 없다. 원래 공원에 그늘이 없기도 하지만, 조금 있다 해도 내 그늘 아니라는 거다. 손톱만 한 그늘도 누군가의 몸통이나 머리가 이미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해가 져도 덥다. 이 정도면 지구 온난화가 갈 데까지 간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그들이 스테이지 사이를 건너 다니며 일으키는 먼지를 공기처럼 마셔야 한다. 옷이고, 가방이고, 신발이고 전혀 먼지가 쌓이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면적까지 모두 먼지가 쌓인다. 

그 안에서 뭘 먹으려면 앱으로 주문하고 받아와야 하는데, 받아와도 먹을 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마치 학교 도서관 자리 맡듯 테이블을 맡아두었기 때문이다. 가방으로 맡은 건 인정해 준다 해도, 다 처먹은 김치말이국수 그릇으로 맡아놓은 인간은 끝까지 기다렸다가 오면 옆구리를 무릎으로 까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집에 돌아가기 불편하다. 인천과 서울은 엄청나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과 버스가 있긴 하지만 미드나잇 스테이지가 끝나는 시간에는 그 둘 모두 이용이 불가능하다. 꽃가마라는 특별편 차량이 있지만, 다들 그걸 타기 때문에 아수라장이다. 

너무 단점만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래도 그 안에는 낭만이 있고, 음악이 있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밴드의 공연에 떼창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의 감동은 아는 사람만 안다.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마치 형제자매 같고 자식 같아서, 유산이라도 물려주고 싶을 정도다.(가진 건 없음)


공연은 모두 너무 좋았다. 다들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관객들은 온몸으로 반응했다. 햇빛이 작렬해서 눈도 못 뜰 대낮에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었던 실리카겔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그룹이었고, 관객들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쥐고 흔들었던 장기하는 헤드라이너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관객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연주했던 엘르가든(락페에서 앙코르를 처음 봄)이나 히트곡 메들리 수준으로 다 훑어준 스트록스는 성실하게 헤드라이너의 역할을 마무리했다. 미드나잇 러너였던 뉴진스의 프로듀서 250도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는데, 같이 공연을 보던 음악기자 친구가 ‘저 음반 <뽕>이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니까?’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기억에 그림처럼 남아있는 공연은 검정치마였다. 

나는 그때 무대 뒤쪽의 둔턱에서 감상하고 있었더랬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지만, 여전히 주변 공기는 대낮 그대로였다. ‘락페에 조금 음악이 약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바람이 잔잔하게 불기 시작했다. 조휴일은 Everything이라는 곡을 부르기 시작했고, 클라이맥스의 부분에서 폭죽음과 함께 종이꽃가루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주변의 공간은 멈추고, 오직 종이꽃가루만이 바람에 흩날렸다. 바람은 시원했고, 무대 앞은 꿈같고, 그의 가성이 주변에 가득했다.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 순간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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