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으로 초밥세트를 주문했다.
저, 메밀소바는 안 나오나요?
주방장은 세트에 메밀소바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겨울에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그런 말은 메뉴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매년 겨울마다 그렇게 운영해 왔을 것이다. 메밀은 겨울엔 안 나니까. 하지만, 그건 쌀도 마찬가지인데…
일식집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왠지 허기가 느껴졌다. 초밥 열 피스, 우동 한 그릇, 알밥 그리고, 게살 튀김까지 먹어놓고는, 간장종지 만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맛보기 메밀소바를 못 먹어 허기진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아직 렙틴 호르몬이 포만감을 관장하는 만복 중추에 신호를 보내지 못한 상황이겠지. 조금만 기다리면 배가 부르고, 허기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무언가를 먹으라는 섭식 중추의 명령 덕에 길 옆 편의점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빵들이 놓인 매대 앞에서 나는 유독 어설픈 일러스트를 자랑하고 있는 ‘어흥 애플 크림빵’을 집어 들었다. 대체 이름이 저게 뭐야? 하지만, 집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허기는 사라질 테니, 어흥 애플 크림빵이던 야옹 스트로배리 단팥빵이던 별 상관없었다. 나는 계산한 빵을 대충 가방에 욱여넣고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식탁 앞에 앉은 나.
정말 이름이 저게 뭐람? 맛대가리도 없겠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배는 계속 고프다.
세상에… 연출된 이미지가 저따위면 실제 빵은 대체 어떻다는 거야?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는다.
빵은 우유랑 같이 먹어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으니, 빵을 먹는다면 우유도 먹어야 한다. 물론 둘 다 안 먹을 것이다.
그런데, 우동 먹은 게 텁텁해서 상큼한 귤이 먹고 싶었다. 빵과 우유 그리고, 귤. 대체 뭘 선택해야 하는 걸까?
앗, 무언가를 먹는 건 이미 당연한 건가?
나는 빵과 우유를 선택했다. 선택한 이상 허겁지겁 먹어주는 거다.
그런데, 생각 외로 존맛(좋은 맛)인걸?
귤이 쓸쓸해 보였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갑자기,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깐다고 안 쓸쓸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쓸쓸해 보여…
저대로 마르면 정말 미라처럼 슬퍼 보일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입에 밀어 넣었는데… 세상 최고로 쓸쓸한 게 아니라, 세상 최고로 셔. 이건 귤이 아니라 염산 주머니였다. 귤즙이 닿은 입술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서, 더 이상 못먹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