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내가 청소에 눈을 뜨게 된 건 몇 년 전 혼자 자취를 하게 되면서 였다. 그때 집에 먼지가 생기는 건 사람의 활동과 관계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는 잠만 잔다 해도 며칠 지나면 집안 여기저기에 알게 모르게 먼지가 쌓인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집 주변에는 바람이 불고, 벌어진 창틈으로 먼지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햇살 아래 천천히 가라앉는다. 창틀 위에도, 책상 위에도, 그리고, ‘딱딱’ 소리만 요란하고 따뜻해지지 않는 낡은 히터 위에도…

그래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청소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작업이다. 처음에는 바닥에 보이는 먼지만 걷어냈다. 그러다가, 장식장 위 물건들의 먼지를 떨게 되고, 욕실 쪽으로 눈을 돌려 세면기 광을 내게 되었다. 점점 보이지 않거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집착하게 되면서 나는 어렴풋이 주객이 전도되고 있음을 느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청소에 중독되다 보면 절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는데, 청소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고 사람은 빈틈이 많기 때문이다. 아예 집 안 전체가 더럽다면 모르겠지만 – 청소라는 취미생활로 – 어느 정도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다면 지저분한 곳은 콘트라스트 효과로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침대 주변이 깨끗하면 장식장의 먼지가 눈에 더 잘 들어오는 식이다. 세면기 광을 내느라 온 힘이 다 빠져 버렸는데 가스레인지 주변의 기름때를 보게 되었을 때의 아찔함을 아시는지… 그런 이유로 자취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던 주말에 늘 걸레를 들고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벽의 먼지를 떨며 도를 닦듯 시간을 보냈다. 

군대 시절, 부대에 사단장 방문 계획이 잡히면 수십 명의 장정들이 각각 건물의 계단을 두 개씩 맡아 두 시간씩 윤을 냈었다.(발로 밟는 그 계단(Step) 맞음) 우리는 할당받은 계단의 수평/수직면 먼지를 제거하고는 그 위에 걸터앉아 천으로 계단 코의 금속을 – 벼루에 먹을 갈듯 – 끝도 없이 문질러 댔다. 먹을 대고 문질렀으면 먹물 10리터는 족히 만들어냈을 것 같다. 그때 나는 같이 광을 내던 선임에게 내 계단을 봐 달라고, 더 이상 깨끗해질 수 없는 상태 아니냐고 물었다. 시간 낭비 같아 이 정도에서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선임은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걸 판단할 수 있는 건 시간뿐이야.

그게 어리석은 질문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늘 더 깨끗해질 여지가 있지만 시간이 없어 멈추게 되는 것이 청소인 것이다. 청소에는 끝이 없다.

하지만, 자취 기간 중 청소에 지배당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 생활은 피폐해져 갔다. 집은 깨끗해졌지만, 손가락에는 습진이 생겼고 몸은 늘 피곤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소하려고 그 먼 곳에서 자취를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집 안의 지저분한 장소들을 낯설게 하기 시작했다. 욕실 문은 늘 닫아두고, 텔레비전 장식장은 뒤편이 안 보이도록 벽에 붙여버렸다.(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와는 다를 수 있음) 청소가 덜 된 장소는 동양화의 여백이고, 먼지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한 줌의 먼지로 돌아간다는 말도 있다. 한 줌의 흙이었나? 어쨌든, 그렇게 청소를 멀리하게 되니 산다는 건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는 점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시 청소를 하기 시작해서 마음이 편하면서도 불편하다는 이야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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