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감상

오랜만에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두 편 연달아 영화감상을 했습니다. 원래는 아바타 2를 보러 가려했는데 막상 움직이려 하면 다리가 떨어지질 않네요. 죽을 때까지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대신 감상했던 영화는 <고령화 가족>과 <연애 빠진 로맨스>였습니다. 

고령화 가족

중간에 한번 위기가 있었지만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봤어요. 그 힘은 박해일과 공효진이었다고 할까? 공효진의 전매특허인 약간 툴툴거리며 볼멘소리 하는 연기는 싫증이 안 납니다. 박해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둘인데, 감기면서도 명징하게 전달되는 발성과 옆모습에서 만날 수 있는 날카로운 눈매. 순해 보이는 얼굴에서 가끔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카리스마는 바로 그 눈매 때문이라는 것에 한표 던져볼게요. 윤여정의 연기는 안정적이고, 윤제문도 후반에 갑자기 누아르 주인공으로 각성하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했죠. 예지원은 출연작 중 가장 예쁘게 나온 작품이 아니었을까요? 

스토리는 잔잔했으며 기억에 쿵 남는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 때우기에 나쁜 선택은 아니라 생각.

연애 빠진 로맨스

전종서는 버닝에서 처음 만나봤던 것 같고, 영화도 나름 괜찮았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배우입니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라는 단편소설을 기반으로 하는데, 두 시간 남짓 늘려 스크린에 올렸음에도 지루하거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못 보신 분들께는 추천.

이번 연애 빠진 로맨스는 개인적으로 전종서가 원톱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요. 여주인공의 공감각적이고 복잡한 상황을 연기하는 데 있어 그녀의 선명하고 맑은 눈은 큰 무기가 되더라고요. 로맨스물이 그렇듯 키치하고 감각적이며 쿨한 대사들이 넘쳐나는데, 그런 건 연기에 따라 굉장히 어색해지기도 하죠. 하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자연스럽게 소화해 냅니다. 그 이유는 각 신 Scene의 상황에 집중하기 이전에, 그런 여러 상황의 주체가 되는 주인공 ‘함자영’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구축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손석구의 연기도 괜찮긴 했지만, 버릇인 시니컬하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표정을 잘 컨트롤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뭐 엄청난 인기를 구가謳歌하고 있는 이유가 그 미소일 것 같긴 하지만… 

 시나리오 내의 ‘박우리’ 캐릭터 설정 탓이겠지만, ‘함자영’의 톡톡 튀는 대사에 응사하는 남주의 대사가 조금 심심했던 것이 약간 아쉬운 건 있었어요. 다른 연애물과 별다른 차이점도 없긴 하고요. 그럼에도 두 시간이 훌쩍 가긴 합니다. 

영화 말미에 둘이 한잔 하는 장면에서 ‘박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원래 소설 썼었거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었단 말이야.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는 소설을 쓸 수가 없다. 그 말 들은 다음부터 그냥 안 써지더라고…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죠.

내가 너 소설 쓰게 해 줄까?

저는 이런 류의 대사를 좋아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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