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 버디 ‘우주인 레오’의 발매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그 순간에는 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마치 몇 주 전부터 기다리던 한정판 사전 예약이 조금 전, 1분 만에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알게 되는 것처럼…
지난주 ‘회사원 제이’를 얻은 것도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생각했던 것보다 추운 날씨에 집 앞 스타벅스에 들러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려했던 것뿐이었다. 주문을 할 때 마침 포스 옆에 놓여있던 귀여운 플레이모빌 버디를 본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대신 포스 앞의 점원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바리스타 페이보릿 음료가 뭐예요?”
이 귀여운 버디를 사려면 대체 뭘 마셔야 하는 거냐니까요? 제발 당장 말해 달라고요!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고, 그녀는 시선으로 행사 게시물을 가리켰었다.
솔직히 그날 얻은 ‘제이’는 별로였다. 우선 남자이고, 안경도 먹선으로 대충 그려져 있는 데다가 녹색 재킷을 입고 있었으니까. 세상에 누가 녹색 재킷을 입고 다닌다는 거지? 마스터스의 우승자도 아니고 말이다. 아니 우승자라도 골프클럽 시상식에서나 입고 말겠지. 하지만, 다른 선택지였던 ‘하이커 제니’를 집지 않았던 건 박스 사진에서 ‘제이’가 들고 있던 은색 랩탑 때문이었다. 매일 랩탑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나와 조금 닮아있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조립해 보니 그 랩탑은 90년대 랩탑처럼 볼품없이 두껍기만 했다.
하지만, 그날도 ‘제이’와 ‘제니’는 모두 완판 되었고, 어디에서도 다시 구할 수 없었다. 몇 시간 만에 두 플레이모빌은 히스토리가 되어버렸고, 세상은 그것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루저로 나뉘었다. ‘내가 잘 산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제이’의 곱슬머리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평상시처럼 집을 나와 걷다가 스타벅스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오늘이 ‘우주인 레오’ 발매일이라는 게 떠올랐다. ‘아침이니 괜찮겠지’하고 들어갔지만, 비교적 한산한 매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 지난번과 30분 정도 차이였는데도 – 모두 매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지, 뭐’ 하고는 유난히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저녁으로 타임워프 해버린 듯한 느낌으로 건물을 나와 강남역을 향해 걷는데, 대로 옆으로 스타벅스 매장이 보였다. 솔직히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어볼 수는 있는 거잖아? 혹시 구석에 잘 안 보이게 놓여있던 하나가 발견될 수도 있다. ‘다 팔렸.. 어머! 손님, 하나가 남았네요!’ 하고 말이다. 그런 건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천천히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가서는, 조금은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점원에게 ‘우주인 레오’가 매진되었는지 물었다.
‘네? 아침에 매진됐는데요?’
그녀는 지루함이 방금 해소되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분명히 언제 매진되었냐고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그녀는 계속 방긋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마치
‘야 이 머저리야, 당연히 새벽에 매진됐지. 게으른 놈아.’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우주 공간에 둥둥 떠버릴 텐데 커피를 컵으로 마시는 게 말이 되니? 귀 옆에 눈덩이 두 개는 또 뭐야? 그래도 우주복은 몸뚱이에 앞뒤로 부착하는 착탈식이네? 헤드셋도 멋지고? 하고 생각하다가
‘스티커 남은 건 없나요?’
하고 되물었다는 이야기.
레오는 스티커도 덤으로 줬습니다. 친절한 스타벅스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