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샀던 랩탑의 저장 공간이 좀 부족했어. 그래서 한가한 날 SSD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을 세웠지. 아무래도 비공식적으로 완제품을 해체하는 일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이걸 어떻게 분해하는 거지?’ 했겠지? 그런데 말이지, 나는 이런 걸 몇십 번이나 해본 능력자라고.
하판을 보면 어디에도 나사는 보이지 않아. 하지만, 마치 제조될 때부터 하판과 하나였을 것만 같은 수상한 미끄럼 방지 고무판이 눈에 들어와. 커터로 들어 올리니 그 아래로 살짝 나사홈이 보인다. 너무 뻔해서 웃기지도 않잖아? 나사를 돌려 푼 다음, 랩탑의 측면 홈에 기타 피크를 잔인하게 밀어 넣고 힘을 주어 비틀었지. 그러자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랩탑 내부가 드러나.
기타를 친 게 도움이 되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어. 과연 랩탑을 분해하는 게 기타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분해 작업에 집중해야 해. 벌어진 틈 사이로 상판과 하판 사이를 연결하는 얇은 필름이 보인다. 이걸 잘못 떼어내면 랩탑이 고장 나. 아마 그런 경험을 했던 사람들 꽤 될걸? 나는 핀셋으로 필름을 조심스레 떼어낸 후 상판을 완전히 들어냈지. 마치 이 랩탑을 직접 디자인했던 엔지니어처럼.
이후 바로 배터리를 분리한 다음(배터리 연결 상태로 작업하면 쇼트가 발생할 수 있음) 예전 SSD를 들어내고 새것으로 교체했어. 그리고는 마치 순간 역행을 하는 시간 여행자처럼, 역순으로 재조립을 완료했다. 윈도를 재설치하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했어. 모니터에 뜨는 윈도 로고를 보며 짜릿함을 느꼈지. 그런데 조금 사용하다 보니, 한 귀퉁이의 상판과 하판이 완벽하게 붙지 않고 들떠 있는 걸 발견하게 돼.
처음에는 다시 해체하기 귀찮아서 그냥 모른 척 하고 싶었어. 하지만,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가.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지. 식사 때 젓가락으로 김을 집어 들었는데, 두께가 그 틈에 딱 맞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머릿속이 온통 그 틈으로 가득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나는 식사를 때려치우고는 다시 랩탑을 분해하기 시작했어.
원인은 나사 체결용 너트를 고정하는 하판의 플라스틱 부품이 깨진 거였어. 그래서 그쪽 귀퉁이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던 거야. 다시 그 너트를 하판에 고정시켜야만 문제가 해결 돼. 나는 플라스틱과 금속을 접합하는 것에 대한 조언을 받기 위해 어르신을 찾았어.
‘플라스틱과 금속을 접착하려면 에폭시가 최고야. 에폭시는 두 가지 액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둘을 섞으면 아주 단단하게 굳어. 에폭시가 없다고? 그러면 혹시 순간접착제가 있나? 맞아. 그것 만으로는 잘 안 붙어. 하지만, 접착제를 도포하고 바로 베이킹 소다를 뿌리면 이야기는 달라져. 그게 경화제 역할을 해서 엄청나게 빨리 또 단단하게 굳어지거든.’
나는 바로 그 조언을 따라, 나사의 위치를 잡고 어르신께 들은 대로 작업을 했어. 그 결과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아? 살짝 플라스틱 위의 나사를 건드려보니, 마치 코뿔소의 뿔처럼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지. 할렐루야! 베이킹소다를 접착소다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니까? 그다음, 필름을 다시 연결했어. 그런데 보드에 부착되어 있던 필름 고정용 플라스틱 부속이 떨어져 나간다? 이런 일은 처음이야. 땀을 뻘뻘 흘리며 잘라낸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고정부에 붙이기 위해 노력했어. 내 인생의 어떤 시도보다 어려웠다는 것만 이야기할게. 필름을 수십 번 고정부에 밀어 넣어 봤지만 헛수고였어. 한 시간가량 지났을까? 무심코 필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접촉부의 금속이 너덜너덜한 거야. 감이 왔어. 여기 까지야.
윤종신과 이정의 ‘두 이별’이 떠올랐다. 윤종신처럼 지질거리기보다는, 이정처럼 보내주고 싶었어. 뭐긴 뭐야? 랩탑이지. 나는 조용히 랩탑의 상판과 하판을 결합시키고는, 문화재 복원 전문가가 조심스럽게 손상된 고서를 복원하듯, 일곱 개의 나사를 하나하나 체결했지. 외형이라도 처음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었거든. 하지만, 아까 너트를 제대로 된 위치에 못 붙였는지 마지막 나사 하나는 끼우지도 못했다는 이야기.
기타나 깽깽거릴게 아니라, 수학을 버리고 공대를 갔어야 했는데…
후회를 하는 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