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팅

오늘 팬클럽 먼저 내한공연 티켓팅을 한다니까요? 일반인은 내일 열두 시고요.

늘 엄청난 정보를 주는 친구의 말에 나는 ‘내일을 노려야 하는군.’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됐다. 

‘팬클럽까지는 아니고 그냥 메일링리스트 같은 거 등록만 하면 되는 거였죠. 저는 실패했어요.’

그랬구나. 그렇게 허술했구나. 사실 나는 오아시스의 빅팬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don’t look back in anger’도 좀 심심하다 생각했다(요즘에는 좋음). 그래서 나는 팬클럽에 가입할 정도는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했던 거였다. 메일링 리스트라면 그냥 할 걸. 

‘오늘 열두 시에 또 티켓팅인데 시도 안 하실 거죠?’

사실 오아시스의 내한이라는 건 왠지 음악 역사적 이벤트일 것 같아서 티켓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단정하는 듯한 질문에 오기도 생겨서 그렇지 않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아이패드를 바리바리 싸들고 점심을 먹으러 가던 그녀는 웃기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총총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가며 말한다. 

‘스마트폰으로는 힘드실걸요?’

결국 진짜 그런 지 확인도 못 했는데, 몸무게를 줄이려고 이번주 내내 점심에 삶은 계란 두 개씩 만을 먹다가 처음으로 점심을 먹게 된 게 화근이었다.

나는 부대찌개가 아직 끓기 전, 육수에 잠겨 있는 라면사리를 휘휘저어 익기도 전에 건져먹기 시작했다. 라면은 습기에 눅눅해진 건조소면처럼 딱딱했다. 머리로는 확실히 ‘대체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몸은 마치 겨울잠에 들어가기 직전의 회색곰처럼 미친 듯이 젓가락을 놀려댔다. 멈출 수가 없었다. 추가로 시킨 계란말이도 대부분은 내가 먹었다. 그것도 나의 흡입속도에 놀란 상대가 이대로라면 한 점도 못 먹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함께 달려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였다. 오뎅 무침 밑반찬도 세 접시를 비우고, 부대찌개 안에 둥둥 떠있는 비게까지도 다 건져 먹었다. 심지어 나는 비계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러는 동안 티켓팅은 이미 끝나있었다는 이야기. 

추가: 아이패드를 싸들고 갔던 그녀는 결국 티켓팅에 실패하고 말았다. 노력의 차이가 극명했는데도 결과가 동일하다는 것에 미안한 생각이 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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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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