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의 마사지(1/2)

누군가 내 몸을 만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간지럼도 많이 타서 누군가 옆구리나 발바닥을 건드리면 나도 모르게 엘보 어택을 날림. 아픈 것도 잘 못 참아서, 일제강점기 때 태어났다면 고문 시작과 동시에 물어보지도 않은 기밀까지 일본군에게 다 불어버렸을지도 모른다.(이 시대에 태어난 게 국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천만다행)

하지만, 태국에서는 무조건 마사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너무 당연한 코스로 인식되고 있는 듯했다. 여행 중 하루 일과 안에 마사지를 끼워 넣지 않으면 제대로 된 태국여행을 못 했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나도 매일 마사지를 예약했고, 오늘 첫 번째 마사지사를 마주하고 있다.


전화로 예약을 할 때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남자 마사지사로 해드릴까요? 여자 마사지사로 해드릴까요?’

– 너무 아픈 건 싫은데…

‘여자 마사지사로 해드리겠습니다.’

– 그런데, 시원하지 않으면 어쩌죠?

‘네 알겠습니다.’

질문을 했지만 다음 답변에서 대화를 끝내고 있는 유능한 상담사였다. 뭔가 찜찜하긴 했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한 시간 반 남짓 마사지를 위한 전화였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물어봤어야 했다. 대체 나의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인지를 말이다.


그녀는 근육이 남달랐다. 다부진 체형에 나이는 40대를 갓 넘은 듯했다. 자신의 직업에 자만하게 되는 바로 그때쯤이랄까? 복싱선수같이 벌어진 어깨는 마사지의 모든 테크닉을 구사할만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은 사람은 한쪽다리를 발로 고정시킨 후 두 팔로 나머지 다리를 잡아 찢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손님이니까.

운기조식 運氣調息, 마인드컨트롤, 아파테이아 apatheia, 릴랙스…. 나는 근육의 긴장을 풀기 위해 눈을 감았다.

‘쩹 마이 카? (아파요?)‘

내 허벅지의 위쪽을 무릎으로 누르며 마사지는 시작되었고, 내가 순간 니킥을 맞은 것처럼 온몸을 움찔거리자 그녀가 물었던 첫 질문. 그리고, 끝까지 후회했던 내 대답.

’마이 쩹. (아니요)‘

나는 그 이후 계속 마음속으로 ’쩹 (아픕니다!)‘이라는 즉답을 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무심한 그녀는 면죄부를 얻었다는 듯 마사지가 끝날 때까지 입을 꾹 다물었다.

마사지는 다리 쪽으로 시작해서, 팔, (뒤로 누운 후) 등, (다시 엎은 후) 머리, 마지막으로 몸통 전체로 이어진다. 그중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이는 부위가 바로 다리다. 사람의 다리는 둘이기 때문에 왼쪽(혹은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오른쪽(혹은 왼쪽)까지 순차적으로 마사지한다.

나는 INTP이기 때문에, 양다리에 들어가는 마사지가 동일하지 않은 것을 참지 못하는 편이다. 동일한 마사지를 번갈아가면서 진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만, 어떤 안마사도 그런 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모든 마사지들을 순서대로 연상기억법을 사용해 기억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각 마사지 테크닉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 그런 이유로 나는 눈을 감고 마사지에 의해 유도되는 내 몸 꺾임의 형태를 연상하며 가상의 공간 위에 그것을 순차적으로 쌓기 시작했다.

집중하며 공간에 마사지를 쌓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종아리의 근육 섬유질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하지만, 순간적으로 나는 근육이 둘로 갈라지며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통.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와 함께 가상공간 속의 마사지 테트리스는 젠가가 무너지듯 바닥으로 흩어져 버렸다.

제발 물어봐 줘. 아픈지 물어봐 달라고!

하지만, 묻지 않는 그녀. 너무 아파 쳐다본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보고 말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 계속 공격, 아니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걸까? 혹시 마사지를 받다가 아파서 중간에 그냥 멈추었던 경우가 있긴 했을까? 적어도 나는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세계 최초라면… 아찔했다. 지역 신문에라도 나면 큰일이다. 아침마다 운동을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그게 그냥 까딱까딱하는 거였나 보네?’ 하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잔인하니까. 나는 아프지만 꾹 참았다. 이 정도라면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어도 웬만한 고문에 쉽게 기밀을 내어놓지는 않았겠어. 어쨌든 이제는 그녀의 공격을 최소한의 충격으로 받아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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