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침 스타벅스에 Jalen Ngonda의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의 ‘That’s All I Wanted From You’는 생각 외로 달달하고 평범한 사랑노래지만 가사를 신경 쓰지 않고 들으면 세상의 종말을 탄식하는 것 같은 비장함을 자랑한다. 스타벅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들어왔는데 이렇게 머리 복잡해지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다니… 게다가 내가 딱 싫어하는 목소리다. 시끄러워 죽겠음. 


어제 와인 두병과 소주 한 병을 셋이 나누어 먹었더니 아직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집으로 걸어오면서도 오바이트를 하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집중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문화인이다. 나는 문화인…’ 문화인이고 뭐고 내리 쏟고 맑은 정신으로 걷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참아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술을 마시고 자면 늘 일찍 잠에서 깬다. 새벽 네시반이었다. 사실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오히려 평소보다는 많이 잔 거다.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윤석렬은 여전히 관저 안에서 칩거 중이고,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둔덕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며, 환율은 천오백 원을 바라보고 있다. 세상이 작년 말에서 멈춰버린 느낌. 갑자기 워치에서 알림이 온다.

‘HRV. 30ms. 정상. 당신의 HRV가 정상 범위 내에 있어 스트레스가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심박변이도 측정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해 주는 앱에서 하루에 너다섯번씩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는데, 이 알림이 올 때마다 스트레스가 솟구친다. 알람을 끄고 싶지만 설정에 들어가기 귀찮아서 벌써 한 달째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요즘 스트레스가 잘 관리되고 있을 리가 없는데 저런 메시지라니, 신뢰할 수가 없잖아. 
나는 워치를 풀어 던지고는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따라 너무 하기 싫었지만 그냥 했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는 자전거를 들고 아직 어둑어둑한 바깥으로 나왔다. 찬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제 술자리에서 한 친구는 소설만 읽는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한 권에서 공감도 안 가는 명제를 한두 줄 건지게 되는 자기계발서적 따위는 딱 질색이니까. 다른 친구는 작년, 일 때문에 기술서를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이’라면 몇 권일까 궁금했다. 열 권? 오십 권? 

‘백희성이라고 아세요? 요즘 ‘빛이 이끄는 곳으로’라는 책을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다. 책을 추천받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이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으니까. 서점의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마음에 드는 표지의 책을 골라 읽고는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내게 이런 큐레이팅은 너무 귀한 정보다. 커피를 주문하고는 밀리의 서재에서 ‘빛이 이끄는 곳으로’라는 책을 열었다. 

자 이제 내 주말 미션을 시작해 볼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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