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처음 ‘진격의 거인’은 크고 흉측한 거인들과 그것에 맞서는 인간이라는 단순한 구도라 생각했다. 마치 오래된 서부 영화처럼 선과 악은 명확했고, 독자들은 인간이 거인을 물리치는 결말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를 기대하며 작품을 감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조금씩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스토리는 더 이상 선악구도가 아니었고,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었다. 각자의 입장과 역사의 무게가 복잡하게 얽혔다. 내가 살고 있는 복잡한 세상을 그 안에서 보게 되었고, 그게 점점 불편했다. 

내가 사는 현실 속 주변은 꽤 평화스럽다. 구름은 느긋하게 떠다니고, 사람들은 천천히 걸어 다닌다. 하지만 저런 평범한 사람들도 사회적 갈등 속 자신만의 이념 아래 법원의 담벼락을 넘고 사무실 유리창을 깬다. 자신의 부당함을 소명할 논리를 펼친다. 들리는 것 만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데 시간 때우기 위해 보는 만화에서까지… 별로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던져진 투망처럼 확장된다. 신화적 요소와 시공을 초월하는 세계관이 그 안에 있고, 등장인물들의 가치관도 흔들리는 만화경 속처럼 변한다. 그 안에서 ‘주인공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민하게 된다. 절대적 관점으로 감상하는 상황에서도 정답을 알 수가 없다. 살아가는 게 국지적인 정보와 짧은 소견만으로 안갯속에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이 작품은 현실 속의 그것을 다시 한번 안전한 장치 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종내에는 애초에 정답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인기가 높은 만화라 작가의 우익논란 등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수준 높은 철학적 사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키가 189인 친구를 ‘진격의 거인’이라고 놀렸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음. 물론 작가에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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