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내에 마이크로필름을 숨겨라

‘이제는 정말 없어.’

올해로 스파이 짓을 시작한 지 이십삼 년 차고, 그동안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 나른 마이크로필름만 해도 서른 두통이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마이크로필름은 – 이름이 그렇듯 – 엄청나게 작았고, 내 몸에는 그 정도 크기의 필름을 숨길 곳은 넘쳐났었다. 아마 모든 스파이들이 그때는 그다지 큰 고민 없이 일을 했을 거다. 하지만, 어설픈 누군가가 한번 발각당해버린 곳은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은 그런 정보에 민감했고, 다시 동일한 위치에 숨겨 물건을 나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직업의 난이도를 높이는 건 늘 실력이 부족한 놈들이었다. 그들 덕분에 해가 갈수록 – 콧구멍, 발가락 사이, 겨드랑이, 혀 밑 등등 – 점점 숨길 곳은 줄어들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매번 다른 숨길 곳을 찾아내야만 했다.

‘이번 물건은 보수가 기존의 다섯 배야. 대박이라고.’

‘그건 좋은데, 숨길 곳이 더 이상 없다니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더 이상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 짓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이번만 끝내면 지방으로 내려가 텃밭을 가꾸면서 조용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눈꺼풀 뒤에 붙이는 건 어떨까? 그곳은 아직 누구도 걸리지 않았잖아?’

‘네 일이 아니라고 막말하지 마. 눈꺼풀 뒤에 날카로운 마이크로필름을 붙였다가는 눈을 깜빡일 때마다 각막이 찢어지고 말걸?’

‘아! 정말 좋은 생각이 하나 있어!’

좋은 생각을 낼만큼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들어봐서 손해 볼 것은 없다.

‘내가 얼마 전에 황태 껍질 부각을 먹다가 사래가 걸렸거든. 근데, 그게 튀긴 거라 씹으면 아주 잘게 부서져. 그런데, 입 안은 습기가 있으니 엄청나게 불어나더라고. 말린 것이었어서 더 그랬을까? 어쨌든, 몇 개 더 입에 집어넣고 씹다가 삼키려는데, 순간 목구멍에 뭔가 묵직한 게 느껴져서 ‘이건 아닌데.’ 싶더라고. 그래도 뭐 별일 있겠나 싶어 힘주어 삼켰는데, 그만 그 덩어리가 기도로 들어간 거야. 바로 사레가 들려서 엄청나게 기침을 했거든. 그런데, 아무리 기침을 해도 시원하지가 않더라고. 그건 기도 내의 어떤 공간에 덩어리가 걸려서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거잖아.’

대체 이놈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때까지만 해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답답하게 지냈어. 그러다가 그 상황을 좀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설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수백 번 기침을 하다 보니까 그 울림과 반향으로 점점 감이 잡히기 시작한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리가 없잖아.

‘그 공간에서 부각 덩어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침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거야. 기도의 공간에서 그 물체를 다시 목구멍으로 나오도록 하려면 약간 고개를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인 채로 숨을 조용히 들이마셨다가 폐에서 바람을 내보냄과 동시에 가슴을 위로 탁 쳐주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말로 설명은 못하겠는데, 분명히 느껴지더라고. 그런 거 있잖아. 계란 프라이에 소금을 치다 보면, 정말 어디부터 어떻게 먹어도 적당히 짭짤하게 만드는 황금비를 결국은 알아내게 되는 거.’

나는 프라이에 간장을 쳐서 먹는다. 어쨌든, 이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것 같았다. 마이크로필름을 기도 내 – 존재하는지도 모를 – 공간에 넣어 국경을 넘으라는 거잖아.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우선 황태 껍질 부각을 너 다섯 개 입에 넣고 씹어. 그러다가 입에 가득 찼다 싶으면, 작은 캡슐에 넣은 마이크로필름을 그 덩어리 사이에 끼워 넣는 거야. 그리고, 꿀떡. 너는 실패할 수가 없다니까? 그리고, 국경을 넘어. 조금 답답하긴 할 거야. 하지만, 참을 수 있을 거야. 나도 참았으니까. 넌 나보다 참을성이 더 많잖아.’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고 있는 걸 보면 분명히 그런 것 같긴 하다.

‘국경을 일단 넘으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기침을 해. 수백 번 기침을 하다 보면 나처럼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어떻게 부각과 마이크로필름을 다시 목구멍으로 보낼 수 있을지 말이야.’

정신 나간 방법 같긴 하지만 의외로 그럴듯했다.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분명히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목구멍의 기도까지 열어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 기도란 건 아예 사람이 인위적으로 열어볼 수 조차 없는 구조일 수도 있다. 솔직히 기도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조차도 나는 모르는 것이다.

‘너 황태 껍질 부각 있어?’

‘응, 마침 가방 안에 넣어뒀거든. 자 여기..’

부각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서 순간 당황했지만, 어차피 경험한 친구가 있는 상황에서 조언을 받으며 작업하는 게 더 확실할지도 모른다. 나는 작은 캡슐에 마이크로필름을 넣어 들고는 부각 대여섯 조각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확실히 입 안에서 부피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내 손에서 캡슐을 건네받아 그 부각 덩어리 사이에 그것을 끼워주었다.

‘자, 완벽하게 들어갔어. 이제 삼켜봐.’

삼키려 하자 정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큰 게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각 덩어리는 거대했다.

‘삼켜!’

(꿀떡)

‘어때?’

‘….’

‘응?’

사레 따위는 없이 그 부각 덩어리는 그냥 목구멍으로 쑥 내려가버렸다.

‘….’

‘어… 걱정 말어! 마이크로필름이 소화될 리가 없잖아?’

‘….’


정말 죽이고 싶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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