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어디에나 – 임선우

올해 처음 읽은 책은 작년 말 친구가 소개해줬던 책들 중 하나인 임선우의 ‘초록은 어디에나’였습니다. 이 책에는 ‘초록 고래가 있는 방’, ‘사려 깊은 밤, 푸른 돌’,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 이렇게 세 개의 단편소설과 ‘초록은 어디에나’라는 에세이 하나가 담겨있어요.

소설들은 배치된 순서대로 초현실성이 줄어듭니다. ‘초록 고래가 있는 방’은 낙타로 변하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 ‘사려 깊은 밤, 푸른 돌’은 슬픔이 가득 차면 돌을 뱉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는 밀수를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요. 개인적으로는 뒤쪽의 작품일수록 더 좋았는데,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에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온기가 있어 읽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사마귀 무덤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작고 평평한 무덤 앞에서 영하 언니는 나에게 좋은 것들은 왜 금방 끝나버리는 걸까, 하고 물었다. 언니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언니가 나에 너무나 좋은 것이어서, 그래서 금방 끝나버렸다는 말을 끝까지 전하지 못했다.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에서 그녀들은 우연히 돌보게 된 사마귀가 죽자 그것의 무덤을 만들어 줍니다. 좋은 것은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 건 인지상정이에요. 그런 이유로 물리적 지속 시간과는 상관없이 그것은 항상 금방 끝나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하지만 좋은 것만 금방 끝나는 건 아닙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금방 끝이 나요. 그것을 알게 되면 싫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은 소중해질지도 모릅니다.

‘초록 고래가 있는 방’은 갑자기 양사람이 등장하는 하루키의 소설처럼 초현실적인 상황이 일상처럼 벌어져요. 그런 특이한 상황하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면 테크닉이 필요한데, 그런 상황이나 스토리의 기교적 빌드업이 아직은 조금 약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다음 작품은 더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책도 아주 얇으니 시간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살짝 추천해 볼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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