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리고 봄

이번 주말은 더울 거라 했다. 27도가 넘어간다나? 그래서 반팔 티셔츠와 바람막이 점퍼만 걸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주변에 싸늘한 공기가 가득해서 왠지 안심이 됐다. 아직 여름을 맞이할 준비는 안 되어 있음. 

나는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오랜만에 서울 숲으로 향했다. 사실은 ‘발디’ 쪽을 향했다고 하는 게 맞다. 예전 내가 좋아했던 성수동의 ‘모멘토 브루어스’가 문을 닫고 성북천 근처에 새로 디저트 카페를 오픈했는데, 그곳이 바로 ‘발디’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거. 그곳을 목표로 나오면 거리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되어 늘 그쪽 방향의 더 가까운 목표를 잡는다. 마음이 내키거나, 날씨가 좋거나 하면 지나쳐 더 가면 되니까. 하지만 오늘은 서울숲 옆 스타벅스에서 멈춰 섰다. 입구의 토이스토리 콜라보 포스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곳도 꽤 오랜만이다.


포스 앞에서 커피를 주문하려 하는데 옆에 ‘제조음료 포함 삼만 원 이상 구매하시면, 베어리스타 가방걸이를 드립니다’라는 광고판이 보였다. 물론 가방을 걸 일은 없으니 이런 건 필요 없다. 그런데 꽤 귀엽다. 가끔은 가방을 놓을 의자가 없는 자리에 앉게 될 일도 있겠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지저분해지니 그건 싫다. 나는 조금 깔끔한 성격. 그러고 보면 꽤 유용한 물건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귀여워. 하지만 이것저것 주문을 시뮬레이션해 봐도 삼만 원을 넘기기는 어렵다. 엄청나게 배가 고프고, 너무너무 목이 마르다고 해도 혼자서는 불가능. 그때 입구의 토이스토리 콜라보 포스터가 떠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진열대에 토이스토리 관련 컵, 텀블러가 놓여있다. 웬만한 것은 품절이고, 멋대가리 없이 큰 하늘색 벤티 텀블러와 토이스토리 캐릭터들이 그려진 빨간색 텀블러가 남아 있었다. 토이스토리 캐릭터 일러스트가 너무 예쁘네. 색감도 좋고, 카툰풍으로 그려져서 더 끌린다. 하지만 텀블러가 필요하진 않다. 심지어 작년 말에 이런 식으로 구매해서 개봉도 하지 않은 것도 있다. ‘월리를 찾아라’는 내가 즐겨 보거나 좋아했던 책도 아니었는데…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우리가 만든 솔루션의 퀄리티와 동일한 레벨로 중요한 것이 바로 마케팅 전략이라고 늘 이야기해 왔다. 아무리 수준 높고 정교한 서비스라도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이 사용하게 만들 수 있는 고객여정을 설계하는 것은 깊이 있는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나는 손에 들려있는 토이스토리 텀블러와 베어리스타 가방걸이를 보며 다시 한번 내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바깥을 보니 날씨가 따뜻해 보인다. 이런 날에는 조금 나른한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박효신의 신보 중 ‘AE’라는 곡이 오늘과 딱 어울린다. 나는 그 곡을 걸고 이후 비슷한 곡이 플레이되도록 세팅해 둔 후 계속 창 밖을 쳐다봤다. 가로수도 하늘하늘 가볍게 흔들리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볍다. 심지어는 어르신들의 걸음도 사뿐사뿐이다. 차들도 씽씽(이건 늘 그렇긴 하지만) 달린다. 봄 즈음은 그냥 바깥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유의 ‘바이, 썸머’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즈음을 노래하고 있지만, 어느 계절에도 다 잘 어울린다. 각 계절은 생각보다 짧아서 문득 생각나면 이미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모든 계절은 내게 이별 인사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완연한 봄이지만, 봄은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조금 더 일찍 이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여행자 같은 계절이니까.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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