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랭킹을 쓴 지 서너 달 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나 버렸다. 코로나에게 훅 한해를 빼앗겨 버린 지금, 아직 내 수중 혹은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을 이야기해보자면…
1. 올해의 노래: 반 헬런 <Jump>
지하철에서는 코로나 19 사이트로 상황을 확인한 후 유튜브를 보는 게 패턴이 되어버린 이후 음악을 많이 안 듣게 되었는데, 10월 6일 에디 반 헬런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그 주 내내 이 곡을 돌려 들었다. <Jump>는 사실 올해의 곡으로 끝내기엔 너무 대단하죠.
상큼한 신스가 메인인 이 곡은 록음악이라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시작된다. 락 마니아라면 팝 느낌의 진행에 조금 당황하겠지만,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건반을 밀고 들어오는 기타 솔로에 ‘역시! 록 음악에는 일렉 기타지!’ 하며 안심하게 된다. 하지만, 뒤따르는 오로라 같은 신스 핑거링에 기타 솔로는 바로 찌그러지고, 관객은 그 현란함에 정신을 빼앗겨 버린다. 그 상태에서 – 플랫폼에 열차가 정차하듯 – 건반으로 천천히 드럼 비트를 끌어내려 지지는 피날레는, 듣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의 정점, 리비도의 해방을 선사한다.
‘에이, 안 그런데?’
이봐요. 풀 볼륨으로 들으라고요. 락은 방구석에서 모기 같은 음성에 집중하는 줌 동영상 강의하고는 다르다니까.
2. 올해의 영화: <테넷 Tenet>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논란의 명작. 스크린 앞에서 논리적 사고의 컨베어 벨트 위에 영화 장면 하나하나를 나열하다가, ‘이 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보면서까지 스트레스받아야 돼?’ 하는 생각에 화가 울컥 치밀었었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여주인공은 너무 키가 컸고, 뒤로 걷는 연기자들은 우스웠던 영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이해 못하는 걸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 짓게 된다.
‘왜 저래? ㅋㅋㅋ(하면서, 나도 잘 모름)’
3. 올해의 제품: 지능형 지문 자전거 락
이름은 복잡하지만, 지문으로 언락 하는 자전거용 자물쇠다. 자물쇠가 왜 필요하냐고? 비싼 자전거가 아니라 해도 락을 채우지 않은 채 서너 시간 길에 놓아두는 건 왠지 쫄리니까. 물론 락이 있다고 못 훔쳐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도둑놈이 락걸린 자전거를 질질 고생하며 끌고 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통쾌해진다. 물론 자전거를 도둑맞는 건 슬프지만…
자전거용 자물쇠는 열쇠 혹은 비밀번호 방식이 일반적인데, 열쇠는 가지고 다니기 귀찮고 비밀번호는 어두울 때 맞추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추천하는 제품은 충전식으로 한번 충전에 꽤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락을 풀 때 손가락을 어느 방향에서 가져다 대도 문제없이 잘 인식된다. 심지어는 지문 인식부가 빗물로 흥건해도, 물기만 휴지로 슥슥 닦아 주면 ‘삐빅’ 하고 작동한다니까? 사계절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 올해의 베스트.
4. 올해의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
너무 뻔해서 설명할 것도 없다. 재미있었지만, 보는 내내 영은수가 그리웠다.
올해는 코로나 덕에 꽤 많은 드라마를 보긴 했다. 대부분 추천까지는 못할 것 같지만… <스타트업>은 흥미롭긴 했지만 종영과 함께 바로 잊혔고, 대작이라는 <스위트홈>도 이제는 이시영 등근육만 기억난다. <런 온>은 좀 괜찮은가 싶었는데, 5-6편을 보고 난 지금은 역시 신세경 때문에 눈이 멀었었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그런데, 퀸스 갬빗이 정말 재밌나요? 예쁜 거 아닌가?
5. 올해의 책: 마틴 가드너 주석,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리디북스, 밀리의 서재 모두 정기 구독하고, 전자책 구매도 간간히 했지만, e-book은 여전히 블로그나 담벼락 보는 것 같아서 책을 읽었다는 느낌이 안 든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보고 싶은 책들이 전자 출판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전자책이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가고 싶지 않은 그런 거.
그렇다고 종이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은 건 또 아닌데, 그 몇 안 되는 책 중에 두꺼워서 기억에 남는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올해의 책으로 꼽아본다.
소설 속 세상에 법칙과 설정이 없어 오랫동안 지식인 들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렸던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정말 흔치 않을 것 같다. 흥미 없는 주석들은 대충 넘겨버린 경우도 많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본을 읽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의미가 있었음 (아주 재미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밌지도…)
6. 올해의 유투버: 서울 리안, 주연
둘 다 전문성이 웬만한 전문가들 뺨친다. 정보도 비교적 객관적이고, 전달하는 방식도 여유 있고 유연하다. 하지만, <스브스 캐치>를 야금야금 더 많이 본 것 같기는 함. <스브스 캐치>는 유투버는 아니니까 뭐.
7. 올해의 게임: 스위치 <동물의 숲>
코로나 없는 삶이 그리우신가요? 그런 사람들에게 <동물의 숲>을 추천하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잠깐 켰다가, 마을회관 앞에서 요가하는 동물 주민을 보고 나도 따라 운동을 한 적이 있음.
8. 올해의 게임기: <PS5>, <xbox Series X>
둘 다 못 사서 랭크에 올려본다. 아니 발매는 했는데 어디서도 살 수 없는 건 또 뭐야. 전쟁 중 게릴라전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줄 서고, 저기를 클릭하고, 또 치고 빠져야 건질 수 있는 물건이라면 안 사고 말겠다’ 하긴 했지만, 갖고 싶긴 하다.
9. 올해의 음식: 건대 매운향솥의 <마라샹궈>
오래전에 친구들과 갔었는데, 늦게 가서 거의 아무것도 못 먹고 나왔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생각이 나서 들렀다가, 점원의 추천 조합으로 먹어봤던 마라샹궈는 ‘세상에 이런 맛이?’ 할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소문난 미맹이라는 거.
10. 올해의 강사: udemy의 Angela Yu
백수생활을 한 달 정도 했는데, 그동안 iOS를 배워 앱 하나를 뚝딱 개발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Angela Yu의 강의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산악자전거를 타다가 큰 부상을 당해 시력 저하와 이명까지 겪고 있다는 메일을 – 동보 메일임 – 받았다.(그 메일에 산악자전거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바로 접었음) 얼마 전 파이썬 강의를 또 릴리즈한 것을 보면 괜찮아진거겠죠? 그런 것이길 빈다.
10. 올해의 바이러스: <코로나>
말해 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