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받은 가을

주 초에 비가 몇번 오더니 가을 냄새도 제대로 못맡았는데 겨울이 되어 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가을 느낌 나는 날들이 어느정도 있기는 했을 거다. 가끔 보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알록달록한 단풍 일색이긴 했으니까. 


이번주는 위드 코로나로 저녁 약속도 시작되고 연말이라 늦게까지 처리해야 할 일들도 생기는 바람에 주중이 정말 훅 하고 지나버렸다. 그렇게 맞은 주말 아침, 나는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려다가 찬 바람에 기겁을 하고는 다시 들어와 정말 시체처럼 하루종일 잠을 잤다. 

오후 다섯시 쯤 택배가 도착했다는 메세지에 잠깐 깨서 ‘주말에도 정말 수고 하시는구나’하고 짧게 감사드린 후, 또 두시간 쯤 더 잤던 것 같다. ‘이제는 더 못자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거실로 나오는데 몸이 가뿐했다. 토요일을 예쁘게 동전 크기로 접어 자판기에 밀어넣은 후 에너지 드링크와 교환한 느낌. 
창을 열어 바깥을 보니 어두워진 하늘 아래로 월드타워가 예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만들어질 때는 주변 건물들이 가라앉을 것이라느니 지나가던 비행기가 부딛칠 것이라느니 말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별 탈없이 몇년이 지나도 꼿꼿하게 잘 서 있다. 우주전쟁이든 뭐든 시작되면 저 건물이 반도막 나서 윗부분이 꼭대기부터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첫 장면일 것이다. 우주전쟁의 발발로 서울 전역에 반짝 반짝 적의 침공을 알리는 모르스 부호를 날리는 듯한 월드타워를 얼마 동안 바라보다가, 나는 또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도 일찍 일어났다. 하도 많이 잤더니 새벽에 더는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블랙 프라이데이 매장 앞에서 오픈을 기다리는 쇼퍼처럼, 연인을 안고 새해 카운트 다운을 기다리는 키스 마니아처럼, 어둑어둑한 바깥이 조금이라도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바깥의 형체를 알아볼 정도가 되어 집을 나서는데 공기가 생각보다 따뜻했다. 순간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계절 운용자의 올해 마지막 가을 체험 서비스인가?’ 했다는 이야기. 스폰서는 아마 가을이겠지? 

(따르릉…)
– 저 가을인데요. 11월 14일 쯤 가을 날씨를 한번 더 릴리즈 해주세요.
‘음, 이미 공기가 차갑게 바뀌어서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텐데요?’
– 얼마죠? 
‘시베리아쪽의 에어컨디셔너를 중지하고, 태평양쪽의 온풍을 밀어 올려야 하니까. 참, 이미 가득 차있는 찬 공기 송풍도 해야하고요. 한 천오백은 생각하셔야 돼요.’
– 아저씨, 단골인데 좀 깎아줘요. 
‘천만 주세요. 더는 안 돼요. 정말 잘해드리는거에요.’
– 고맙습니다. 코로나 기간이라 정말 재정이 바닥이에요.
‘가을이 코로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요?’
– 저희는 사람들이 생산하는 가을 관련 콘텐츠의 라이선스로 먹고 사는데, 사람들이 요즘 가을에 관심이 없어서…
‘아. 그래서, 하루 더 가을을?’
– 네… 먹고 살기 힘드네요.

그런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완전히 스위치가 내려가기 전에 가을을 조금 더 즐겨볼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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