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접속과 천기누설

보안 인증 작업이 일주일 동안 실패하다가,
어느 순간 성공 메시지가 떴다.
그 이후 며칠 동안 보안 접속이 안되다가,
오늘 또 갑자기 그게 되는 것이다.

친구는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지만,
나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재빠르게
자신의 디바이스에서 테스트를 하더니
자기는 접속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다시 천천히
서로 다른 아홉 개의 디바이스에서
접속을 시도했다. 
일곱 개는 접속이 되고,
두 개는 접속이 안 된다.

나는 친구에게 ‘날이 조금 따뜻해지면 되겠지’ 했다.
친구는 ‘지구는 평평하니까 내일은 됨’이라고 했다.

지극히 논리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라지만,
지금까지 이런 상황이 꽤 많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나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침대로 가서 자버렸다.
내일을 빨리 당기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새벽에 잠에서 깼다.
지금이 내일인 건지, 
아직은 그 중간 즈음인 건지 
감이 안 왔다.
비몽사몽 간에
접속이 안 되던 디바이스에서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지금은 아직 오늘이었다. 

거실로 걸어 나갔는데 한기가 느껴졌다. 
평년 기온을 웃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여름이 오는 것은 아니다. 
겨울을 향해 조금 느리게 걸을 뿐이다. 
추운 겨울을 보낼 생각을 하니 지긋지긋했다.

다른 할 일도 없어서
사놓고 두달 동안 읽지 않았던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삼분의 일쯤 읽고는 덮었다.
그 뒤를 계속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접속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연결이 된다. 
나는 이런 상황이 싫다.
친구는 ‘내일은 됨’ 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내일인 것이다.
거짓말 할 친구는 아니니까.

물리적인 날짜 변경은 0시겠지만,
진정한 다음날은 새벽 세시 십 분에 열린다. 

세상의 누구보다도 먼저 발견한 날짜 변경의 비밀을 
나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조금 더 
별생각 없이 살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키오스크 주문 만으로도
그들은 벅차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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