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의 작가는 번역가?

얼마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를 읽기 시작했는데, 집 근처에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같은 작가의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다른 제목이었지만 살짝 들여다보니 목차가 ‘시드니!’와 동일하다. 


가끔 표지와 판형을 다르게 하여 재 발간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데, 유독 하루키의 책은 – 인기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글들이 짜깁기되어 전혀 다른 제목의 책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단편 에세이나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이리저리 재단해서는 신간처럼 턱 내놓는다는 건데, 우리나라에서만 그러는 건지 일본에서도 그러는지 궁금해진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의 발간 히스토리를 살펴보자면, 처음은 일본에서 하루키의 올림픽 여행기를 엮은 ‘시드니!’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2001년)된다. 이 책은 7년 후 국내에 문학수첩을 통해(번역 하연수) ‘승리보다 소중한 것’으로 제목이 변경되어 소개되고, 다시 8년 후 비채를 통해(번역 권남희) ‘시드니!’로 발간 되었다.
나는 원제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오만한 번역가 혹은 편집자들의 대책 없는 타이틀 변경은 범죄로 정의하고 싶을 정도다.(물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원제: 벤자민 버튼의 이상한 사건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 류의 초월 번역은 제외)


호기심에 책장을 넘겨보니 ‘시드니!’와 내용은 같지만 읽히는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 문장의 길이나 단락의 구성이 다른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묘사가 다르거나 생략된 부분도 있었다. 
꽤 유명한 번역서가 잘 안 읽힐 때면 원어로도 그런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로빈 쿡’의 의학 소설도 스토리나 구성은 뛰어나지만 문장은 초등학생 작문 같아서 도저히 참고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작가가 의학도였으니 문장력은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서의 문장도 그따위 라면 아무리 줄거리나 구성이 뛰어나도 베스트셀러일 리가 없다. 물론 원서를 직접 읽어본 것은 아니어서 번역이 문제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본어는 우리말과 어순도 같고 단어도 비슷해서 옮긴이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지만, 역시 그들도 사람인지라 문장들에 자신만의 색깔을 담거나 자신만의 표현이나 단어를 무의식 중에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을 조금 읽다 보니 최초 발간되었을 때 왜 반응이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하루키 글의 특징대로 문장이 간결하긴 했지만, 그것들이 조화롭지 못했다. 마치 안남미로 만들어진 밥을 젓가락으로 먹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게다가 잦은 비약적 축약으로(문장을 하나의 단어로 대체, 두세 문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 문장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시드니!’의 번역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느 쪽이든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시드니!’ 쪽이 더 하루키 느낌이 나긴 했지만, 그건 문장보다는 안자이 미즈마루(하루키 에세이의 삽화를 그려주었던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체를 흉내 낸 삽화 때문일 것이다.

물론 번역도 못 하는 주제에 말이 많다고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논리라면 소금 맛 파스타를 먹을 때에도 군말 없이 냠냠 먹어야 한다는 말이니까. 나는 앞으로도 소비자의 권한으로 맘에 들지 않는 것은 계속 불평하겠다고 소심하게 이야기해본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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