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좋아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게 뭔지 아직 모르는 소년은 오로지 정황적 감각만을 사용해 그 감정을 성실하게 표현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상의 주변 데이터를 기록하는 과학자처럼, 좋아하는 곡의 영어가사를 의미도 모르는 채 발음대로 받아 적는 초등학생처럼, 소년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상상한 것을 성실히 기록한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작가의 기본기

개인적으로 끌리지 않는 책은 가차 없이 내려놓는 성격으로, 거의 중도하차 마니아 수준이거든요. 가끔은 책을 중간에 내려놓기 위해 독서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라니까요? 측정 바늘이 우측 끝까지 밀리는 천상 ‘T’로 ’ 읽다 보면 뭔가 장점이 있겠지 ‘하는 따뜻한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요.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제게 좀…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원하는 때 언제든지 글을 써 내려갈 수는 있겠지만, 이야기가 몽글몽글 떠오르다가 글을 쓰고 싶어 어쩔 수 없는 상태까지 기다리는 것.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우산장사처럼, 가을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수면 위의 찌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그렇게 여러 소재들이 머릿속에서 이야기의 덩어리로 뭉쳐지기를 기다리는 자세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마주하는 동안만큼은 오롯이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축제기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신작인 ‘도시, 그 불확실한 벽’은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세계의 끝 이야기의 신선함은 최초 중편에서 맛보았고, 묘사를 위한 맛깔난 문체나 표현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이미 접했기…

하루키의 신작, ‘일인칭 단수’

장편은 숨이 길기 때문에 작가 나름대로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문장력으로 승부하는 작가도 있고, 그건 좀 떨어져도 스토리로 밀고 나가는 작가도 있다. 어쨌든, 능력이 부족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더라도 괜찮은 장점 하나로 꿋꿋하게 밀고 나가면, 독자는 읽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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