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졌어…
’네? 뭐가요?’
어리둥절해하는 친구를 보며 속으로 ‘뭐긴 뭐야 고음이지.’하고 중얼거렸다. 이야기가 좀 긴데, 나는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보컬 트레이너의 두성 내는 법이라는 클립을 보고는 그걸 익혀버리고 말았던 적이 있어.
처음 동아리 오디션에서 ‘너는 ‘솔’이 한계네.’라는 같잖은 선배의 진단을 들은 이후로 평생 정수리 위에 ‘솔’이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었어. 노래방에 가서도 늘 조작 리모컨의 위치를 알아두고, 내 차례가 오면 기민하게 음정을 낮추고 불렀다. 나중에는 반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낮추는 신박한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을 정도였다니까? 내가 부르던 노래의 후렴구에 버릇없이 끼어들던 놈은, ‘와, 이 노래가 올라가네?’ 하며 신나서 따라 불렀지만, 너 올라간 거 아니야. 너는 못 부르는 애라고.
재미로 하던 밴드가 해체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나 같은 저능력 보컬에 맞는 키로 낮추는데 이골이 난 애들의 불만이 컸어. 늘 ‘Interstate love song’만 부를 수는 없다는 거야. 그 좋은 노래를 비난하다니, 실력을 키울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모든 노래의 코드를 바로 한키 반을 낮추는 능력을 갖춘 나랑 비슷한 음역대의 한 친구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솔직히 나는 반음만 낮추면 되는데…)
그랬던 내가 그 유튜브 클립대로 따라 하다가 두성을 다룰 수 있게 된 거야. 두성이라고 두개골이 벌어지면서 소리가 나는 건 아니더라고. 나는 정말 지금까지 그런 줄 알았지 뭐야? 그래서 그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었다. 대체 어떤 놈이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걸까. 두성은 소리가 입 위쪽의 두개골이 울려 나는 소리를 이야기하는 거였어. 심지어는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사용했던 적이 있더라고.
그렇게 신세계를 맞이하고 난 어느 날이었어. 같이 일하는 친구와 떠들다가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자연스럽게 나의 두성 및 고음 스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거지. 너무 뛰어난 능력이잖아. 그런데 그녀는
‘저도 엄청 높이 올라가는데요? 내가 더 잘하는데?’
이러는 거야. 이건 좀 자존심 상하잖아. 적어도 나는 음악에는 진심이라고. 노래방에서 다른 사람들이 노래할 때조차 못 부른다고 생각하면 박수를 치지 않아. 노는 자리에서 왜 저래?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고. 그만큼 나는 적어도 음악에는 관대한 사람이 아니야. 나한테 박수를 받으려면 그렇게 음정이 반에 반음씩 살짝 떨어지거나 해서는 안돼. 드러밍이나 기타의 스트로크에 보컬이 정확히 오버랩되지 않으면 신경이 쓰인다고. 게다가 지금 나는 두성까지 마스터한 보컬의 그랜드슬램 상태잖아!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반드시 그럴 텐데요?’
정말 바로 노래방에서 배틀이라도 붙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어. 대결이라니, 대학가요제 예선도 못 올라가고 데모 심사에서 떨어진 이후로는 잊고 있던 단어였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는 그런 역사적인 배틀을 가로막았어. (코로나는 여러모로 거지 같아.)
그런데, 며칠 전 말린 황태 부각을 먹다가 엄청난 사레가 들리고 만 거야. 그때 그 수많은 황태 부각 조각들이 기도를 통해 폐로 침투를 하고 말았다.(내 생각엔 그래) 덕분에 힘들게 익힌 두성이 무색하게 고음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니까? 진짜 브레이브 걸스의 메보좌 민영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 힘들게 떴는데 제발 지금 말린 황태 부각 따위는 먹지 말라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