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야상곡에 담긴 다섯가지 이야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은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단편소설집이에요.

가즈오는 일본계 영국인 소설가로 89년 부커상을 1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부커상 수상작인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1989)’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저는 영화와 함께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 2005)’를 먼저 접했고, 개인적으로 ‘남아있는 나날’보다 이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가즈오의 장편은 대부분 주제를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읽는 내내 집중하게 되고 읽은 후에도 여운이 오래갑니다. 그런 선입견을 가진 채로 접했던 녹턴은 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데 충분했어요. 삶을 풀어내는 진지함은 그대로지만 – 장편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 재치와 속도감이 더해져 각 에피소드의 중간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의 장편은 무거워서 꽤 많이 끊어 읽게 됨) 

다섯 개의 단편 모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비가 오나 해가 뜨나’와 ‘녹턴’을 추천하고 싶네요. 특히 ‘비가 오나 해가 뜨나’는 책을 읽다가 육성으로 웃음이 터질 정도로 재미있는데, 이런 경험은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후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상황의 묘사가 너무 디테일해서, 책을 읽고 있지만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대화 장면을 묘사할 때, 대사의 전달 외에도 평범하지 않은 상황의 변주를 함께 빌드하는 아래와 같은 장면도 꽤 좋죠. 이런 기교는 아마추어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다니까요?

‘완전히 낫기 전에, 그러니까 괜찮은 날로부터 하루라도 먼저 색소폰을 불었다가 얼굴 피부가 온 방 안에 조각조각 흩어져 버릴 거예요!’ 그녀는 이 생각이 상당히 재미있었던 듯 나를 향해 고갯짓을 하면서 마치 이런 재치 있는 농담을 내가 한 것처럼 이렇게 외쳤다. ‘그만해요, 너무 심하다고요!’ 

책이 두껍지도 않아서 잠깐잠깐 시간을 때워야 하는 분들께 가볍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 ‘녹턴’입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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