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On 런 온

이 드라마는 태양의 후예, 미스터 선샤인의 보조작가였던 박시현 작가의 입봉작이에요.

개인적으로 드라마 작가의 입봉작이나 소설가의  문단 데뷔작 혹은 웹툰 작가의 등단작을 좋아하는 편인데, 예술가의 첫 작품은 테크닉은 좀 부족할지 몰라도, 넘쳐나는 영감, 독창적 아이디어 그리고, 멋모르는 패기가 어우러져 그 신선함이 드레싱을 거의 뿌리지 않은 야채샐러드 같기 때문이에요. 베어 물 수만 있다면 ‘아삭’ 하는 소리가 날지도 모릅니다.

이 드라마도 시작은 그랬어요. 다른 건 다 던져두고라도 캐릭터끼리 서로 대사를 치는 재미 만으로 다음회 – 다음회를 이어가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시원시원했다고 할까? 등장인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 배려를 위한 테일러링을 거치지 않은 채 – 목소리에 실어 내보내는 게 통쾌했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었나? 물론 이렇게 순간순간 재기 발랄하게 깔끔한 대사를 칠 능력도 안되지만, 늘 하고 싶은 말들은 머릿속 호모 소키에스 homo socies 적 사고에 의해 스크리닝 되어 반도 못 내뱉었으니까. 물론 내키는 대로 툭툭 할 말 다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요.(부럽습니다)

드라마 소개글을 보고는 무릎을 탁 치고 말았는데, 역시 작가도 그 안에서 소통이라는 큰 소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 소개 글을 작가가 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이 어려운 시대,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랑을 향해 ‘런 온’하는 로맨스 드라마’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실 드라마가 신선하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에, 그들을 둘러싼 주변 상황까지. 하지만, 중요한 건 설정의 신박함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이 빠져들게 만드는 묘사의 디테일이겠죠? 마치 캐릭터가 오늘 지하철 옆자리에서 나를 흘끔 쳐다봤던 그 사람인가 싶도록 만드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것들은 배우가 작가와 함께 공명해줘야 합니다.

이 작품의 주연들은 성실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돌이었던 임시완은 이제 어느새 연기자가 다 되어버렸고, 이름 만으로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을 정도인 신세경까지. 드라마의 대사들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들의 대사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그 느낌이 배가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네요. 게다가, 신세경의 임시완을 향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머릿속이 복잡하고,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착한 사람인 건지, 나쁜 놈인 건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사람들. 개인적으로는 정말 딱 질색인데, 이 드라마에는 그런 캐릭터가 없어서 좋아요. 정말 하나같이 생각하는 대로 내뱉고, 그렇게 보이는 만큼이 딱 그 사람인 캐릭터들 뿐입니다.

‘달리는 게 직업인 건 어떤 기분이에요?’

오미주(신세경)가 포장마차에서 이렇게 물어보자, 기선겸(임시완)은 이렇게 대답해요.

‘숨찬 기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말한 것 같죠? 아무것도 아닌 이 대답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저는 가끔 자전거를 끌고 한강변을 달리거든요. 대부분은 설렁설렁 타면서 사람도 구경하고, 강변의 건물도 한번 보고, 하늘도 들여다봐요. 이건 분명히 직업의 느낌은 아니에요. 그런데, 가끔은 정말 페달을 효율적으로 빠르게 밟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자전거를 탈 때가 있습니다. 마치 내 존재 가치가 그것인 것처럼. 그때 귀에서는 심장 박동 소리만 들리고, 눈에는 앞바퀴가 올려진 길만 보여요.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할까? 달리는 내내 머릿속에는 숨이 차다는 생각뿐인데, 아마 그게 임시완이 이야기했던 그 기분이겠죠. 물론 제 직업이 사이클링은 아닙니다만.

저는 ‘숨찬 기분’이라는 답에서 직업이 가지고 있는 그 엄중한 무게를 다시 한번 느꼈거든요. 직업이 달리는 것이든, 소설을 쓰는 것이든, 회사원 이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진중함은 동일할 겁니다. 교육기간을 끝내고 사회의 일원으로 걸음을 내딛으면서 새롭게 정의되는 ‘나’의 아이덴티티. 여러분들은 그것에 만족하시나요? 그리고, 그 무게를 잘 견디고 계신가요?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샜는데, 어쨌든 저는 저 대사에 갑자기 제 직업까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아직까지는 4회가 진행 중이라 더 재미있어질지, 아니면 힘없이 고꾸라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추천은 조금 더 보고 드려볼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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