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떠난 뒤 – 빛과 소금

얼마 전 봄비가 내리는 날, 유튜브를 보다가 꽤 괜찮은 봄날 플레이리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봄을 가장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이라는 영상이었던 것 같은데, 전 곡이 모두 너무 좋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리스트 안에 아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였다. 나도 꽤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인데, 그런 내 레이더를 벗어난 띵곡들로만 만들어진 플레이리스트라니… 그 클립을 만든 유투버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을 정도였다. 친구 중에 음악에 꽤 내공이 깊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도 그런 플레이리스트인지 궁금했다. 바로 공유. 

오늘 날씨와 너무 안 맞아서 감점

아차. 오늘은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인데 봄날의 미뉴에트 같은 곡들을 공유하다니, 이런 실수가 있나. 날씨나 상황에 맞는 음악을 적절히 찾아 듣고 추천하는 것은 프로리스너의 기본이다. 기본을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는데…

게다가, 자신만의 음악을 찾아 듣지 않고 남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것도 감점

아차차. 얼마 전 생각 없이 플레이리스트나 탑백을 듣는 비주체적인 음악감상에 대해 한마음으로 비난을 했었지? 다양한 장르 음악의 발전을 막고, 획일화된 공장식 음악생산을 부추기는 현 상황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남의 플레이리스트를 몰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조금 찔리기도 했었다. 차트도 궁금할 수는 있지 않나? 음악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듣지만 않으면 된다. 나는 궁금한 곡만 듣는다. 그런데, 차트에 올라와있는 곡은 대부분 궁금함. 그건 그렇고, 그렇게 어설픈 플레이리스트 공유에 대해 후회하고 있는데, 그녀에게 유튜브 링크가 하나 넘어왔다. 그 곡은 빛과 소금의 ‘그대 떠난 뒤’였다. 대체 그 나이에 이런 곡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곡은 무려 1990년에 발매된 그들의 1집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최근 시티팝이 유행하며 90년대의 음악들을 뒤져 듣는 사람들이 많아져 더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조금 찾아보니 꽤 많은 음악가들이 리메이크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원곡이 제일 좋았음.

이때 즈음의 음악들은 가사를 들으면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역시 이 곡 속에서도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 헤어진 그녀와 함께 걸었던 길을 홀로 걷고 있는 가사 속의 주인공이 처량하기 그지없는데, 맑은 날에 들었다면 첫 소절에 바로 다음곡으로 넘겼겠지만 비가 오는 날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지. 음악 속의 주인공이나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감상자들은 우울하겠지만, 그런 것 없는 나는 멜로디가 좋아서 자꾸 돌려 듣게 된다.

클로즈 림샷이 중독적인 이들의 4집 수록곡 ‘아카시아 아가씨’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 곡은 80년대 아카시아 껌의 광고음악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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