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가브리엘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단순히 소년 소녀의 성장담이나 성취에 관한 기록, 혹은 일반적인 연애소설 등으로 분류해 버리는 건 왠지 좀 아쉽다. 이 작품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하이라이트 없이 그대로 떠 올린 것 같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캐릭터는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고, 소설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건들은 마치 현실 세계의 물리 엔진이 작동하듯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허구의 이야기 중 이 정도로 치밀한 지적설계를 만나본 적이 있었나? 영리하고 세심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구절들 몇 개를 소개해보자면,

프리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세이디를 감싸 안았다. “오, 우리 아기. 마음이 몹시 힘들었겠구나.” 프리다는 엄청나게 큰 휴대폰을 꺼내더니 낮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세이디와 함께 세련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가 풀이 죽어있는 이유가 사소해 보여도, 그 혹은 그녀에게는 그것이 세상을 가로막는 장벽 같을 수 있다. 그때 인생에 훨씬 중요할 수도 있을 약속을 뒤로하고 함께 일상 안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 어른의 미덕이구나.

경매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낙찰받은 다음 그 집을 배에 실어 외국으로 옮기고, 일단 외국까지 갖다 놓고 보니 내가 마음에 들어 한 건 사실 집 자체가 아니라 집을 지은 재료였다는 결론이 나와서, 그 집을 공들여 하나하나 분해한 후 완전히 새로운 집으로 다시 짓는 작업이었다.

경험이 쌓이게 되면 이제 모든 것을 어느 정도는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면 전혀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거나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다. 모든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

[아래는 이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음]

특히 이야기의 중반부, 등장인물 중 한 명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표현하는 챕터에서 나는 진심으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존재의 소멸을 이렇게 공감각적으로 아방가르드하게 서술할 수 있다니… 마치 내가 아는 이의 죽음을 경험한 것 같았고, 이후 책을 덮을 때까지 그의 죽음을 추억하는 장면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어떤 영상을 짜깁기한다 해도 그녀의 서술이 전달하는 슬픔의 반도 표현해 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너는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엄밀히 말해서, 몇몇 판본에는 ‘말을 다스리는 자’로 번역되어 있어.”네가 말한다. “하지만 그건 네가 아니지.” 샘이 말한다. 샘이 처음 너를 그렇게 불렀을 때는 조롱하려는 의도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이름은 친구들 사이의 애정 어린 농담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너는 그 별명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너다.

언젠가는 이 부분을 원작의 언어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픽셀과 게임이라는 매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 이 세계관에 더 깊게 동화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취향의 필터를 걷어내더라도, 이 작품은 최근의 모든 독서 경험 중 가장 밀도 높은 여운을 남겼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올해의 끝자락, 내 기억의 아카이브 가장 상단에 고정될 텍스트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약간 두껍긴 하지만, 강력하게 추천해 본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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