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바퀴

주말 아침,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서면서 늘 ‘오늘은 어디까지 갈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아니고, 다시 출발하는 곳으로 돌아와야 하니까. 늘 그랬다. 어딘가에서는 180도 턴을 한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간다. 가끔은 조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내 멈춰 서게 된다. 아주 드물게 그곳에 서서 ‘조금 더 갈까…’하고 고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돌아선다. 마치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경비행기처럼, 이벤트 호라이즌을 마주한 우주인처럼, 미련 없이 본능적으로 방향을 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일 다시 일하러 갈 필요도 없고, 돌아와서 걷을 빨래도 없고, 빨리 먹어치워야 할 식재료도 없다면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갈 수 있을까? 길을 따라 계속 가면서 도로 옆 벤치에서 잠깐 쉬고, 처음 만나는 카페에 들어가고, 처음 가는 식당에서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먹고, 피곤해지면 주변의 숙소에서 잠을 자며 그렇게… 그렇다 해도 쉽게 그러겠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윤종신의 11집 앨범에는 앨범 타이틀과 동일한 ‘동네 한 바퀴’라는 곡이 있다. 이 앨범에서는 ‘너에게 간다’라는 곡이 유명했지만, 나는 이곡을 좋아했다. 

계절의 냄새가 열린 창을 타고서
날 좁은 방에서 밀어냈어.
오랜만에 걷고 있는 우리 동네
이제 보니 추억 투성이

꽤 오래전에 실연을 한 주인공이 다시 그 계절을 맞아 동네를 걸으며 그녀를 추억하는 지질한 내용의 가사인데, 나는 이런 류의 감성이 좋다. 매일이 똑같을 동네의 광경은 계절과 겹쳐지고, 여자 친구와 겹쳐지며 새로운 모습을 겹겹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상황들이 묘하게 맞아떨어지게 되면 동네는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되며 어제와는 다른 공간으로 다가온다. 

추억 속의 멜로디 저 하늘 위로
우리 동네 하늘의 오늘 영화는
몇 해 전 너와 나의 이별 이야기
또 바뀌어버린 계절이 내게 준
이 밤 동네 한 바퀴만 걷다 올게요.

잔잔하면서도 밝은 멜로디는 주인공이 이미 아픔을 모두 극복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잊고 싶은 기억은 아니다. 그에게는 그녀와의 기억이 익숙한 동네의 모습처럼 소중할 뿐이다. 

계절은 또 이렇게 너를 데려와
어느새 난 그때 그 길을 걷다가
내 발걸음엔 리듬이 실리고
너의 목소리 들려 추억 속의 멜로디 저 하늘 위로


오늘 아침에는 조금 더 멀리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긴 라이딩 동안 감상하려고 다섯 곡을 엄선해 골라 고음질 파일로 DAP에 밀어 넣고, 유선 이어폰도 챙겼다. 앞만 보고 한숨에 달려 전혀 모르는 곳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어폰을 귀에 밀어 넣고 달리고 있는데, 세 번째 곡으로 윤종신의 ‘동네 한 바퀴’가 흘러나왔다. 한강변으로 진입하던 나는, 그 곡과 함께 자전거를 돌려 동네 골목으로 들어섰다. ‘동네 한 바퀴’를 들으면서 동네를 달려주는 건 고등학교 선배인 보컬리스트에 대한 예의니까. 물론 그는 나를 모르겠지만…

그렇게 동네 골목을 달리다가 익숙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고, 커피머신이 예열되는 동안 카페 주인분께 흥미진진한 토요일 저녁 이야기를 들었다. 따뜻한 아침 햇살 아래로 시간은 평소보다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이내 나는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들었고, 그녀와 인사를 나눈 뒤에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모르는 곳까지 자전거를 달렸다면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나는 천천히 페달을 밟아 다시 동네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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