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스쿠버다이빙

이제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마스크를 잊는 경우는 거의 없다.(물론 비타민을 먹는 것은 아직도 종종 잊는다) 요즘에는 마스크가 재난 시대 구호품처럼 찬장에 가득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한 달에 서너 번 사용할까 말까 하는 희귀품이었다. 미세먼지 관련 긴급 재난문자를 받는 날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낀 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평화로운 시기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국민안전처에서 미세먼지 경보를 긴급재난 문자에 추가했던 2017년, 해당 경보 메시지에 처음으로 마스크를 구매했었다. 집 앞 약국의 귀퉁이 마스크 진열대에는 숙취 해소제만큼이나 다양한 마스크들이 걸려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초미세먼지까지 차단하려면 KF(Korean Filter) 94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마스크를 썼을 때는 많이 불편했다. 마치 펌프 컨트롤러를 교체하러 우주복을 입고 유영하는 것 같았다. 마스크 안은 심각한 산소 부족 공간이었기 때문에, 미세먼지에 폐가 상하는 것과 산소부족으로 뇌가 손상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강제적으로 전 인류가 뇌손상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최소한의 호흡으로 생존이 가능하도록 진화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화가 덜 된 나는 아직도 마스크가 불편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오래전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 이런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나는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물속에서 가이드의 손을 꽉 잡고서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데에만 집중했었다. 그런데 가이드가 어떤 이유로 갑자기 내 손을 놓았고, 덕분에 들숨-날숨의 균형이 깨져버리고 말았다.(나쁜 놈) 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숨을 더 크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가는 튜브를 통해 전달되는 산소는 부족했고, 원하는 만큼 산소를 들이마시지 못하게 되자 이내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불안 때문에 생긴 불필요한 움직임으로 마스크에 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가이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가오라고 손짓하고 있었지만, 내겐 저 세상으로 잘 가라는 제스처로 보일 뿐이었다.

난 이제 죽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뭘 하던 인생의 덤이다. 어차피 죽게 되는 거니까.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졌다. 무위자연 無爲自然.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의 침착함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노자는 ‘유위를 버리고 이 우주의 흐름에 동참하라’ 했고, 나는 그때 평생 가장 그 말에 가깝게 다가갔었다. 이미 누구도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나를 살릴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입 주변에 찬 짠 바닷물을 순간적으로 훅 들이마셔 버리고는, 다시 주 호흡기를 물고 천천히 침착하게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난 위기를 넘겼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스쿠버다이빙 사건은 잊지 못할 기억이긴 하지만,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스크는 몇 개월 동안은 아무 불평 없이 더 쓰고 다닐 수도 있다. 종이 마스크의 틈이 벌어지면 코로나에 걸릴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제발 이 상황이 종료되어 햇빛이 쨍하면 별다른 고민 없이 맨 얼굴로 밖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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