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의 독심술사

샌프란시스코, 제팬 타운 내 니지야 마켓의 남자 캐셔는 언제나 싹싹하고 친절하다. 다른 곳에 줄을 서 있어도 자신의 계산 라인이 비면 친절하게 ‘이쪽으로 오세요’ 하며 불러 계산을 해주는 성실파이기도 하다. 오늘은 학교에서 미적 거리다가 집에 늦게 출발한 데다가 비까지 와서 혹시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문을 닫기 전에 도착했다. 오늘의 피로가 내리는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더 가깝기 때문에 홀푸드마켓*보다 이곳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저녁에 준비할 요리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며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모든 식재료들이 신선해 보였다. 잔뜩 담은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 뒤쪽에 줄을 섰는데,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이곳은 캐셔들도 참 빠릿빠릿하다니까. 평소에는 벙어리처럼 장바구니를 포스 위에 올리기만 하는 나지만, 엄청나게 마음이 풍성한 오늘은 로컬들처럼 친절하게 한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이거 계산 부탁해요.”
“네.”
“이 복숭아 참 맛이 좋더라고요(미소).”

“이십오 불입니다.(무뚝뚝)”

…..

이봐! 나도 네가 좋아서 말을 걸었던 건 아니야! 그냥 오늘 재수가 좋아서, 문 닫기 전에 도착해서 기분 남달랐을 뿐이었다고! 그리고, 복숭아 맛이 거기서 거기지. 아주 맛있었던 것도 아니야. 내가 미소 지은 건 어제저녁에 봤던 재미있는 유튜브 클립이 생각 나서였다는 것도 말해줄게. 물론 그 클립을 너한테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이 카드로 계산 안 해?!


“직접 긁어주셔야 돼요.”
“yeah..”

독심술을 하는 건가? 잠시 무서워졌다.


* 샌프란시스코 내의 홀푸드마켓은 2023년, 치안(치한 아님) 문제로 영업종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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