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을 듣다 보면 가끔 유독 가사에 매몰되어, 곡이 끝날 때까지 무너진 동상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개인적으로는 가사보다는 멜로디나 연주, 혹은 보컬 색에 더 집중하는 편이라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좀 새롭다. 물론 가사에 휘둘린 건 맞지만, 그 순간의 음악가와 내 상황이 묘한 시너지를 만든 것이기도 하겠지.
그래서 모두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소심하게 남겨두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로로 <0+0>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톤다운된 차분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이는 저 가사는 정말 최고다. 정말 버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질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너도 같은 생각이지’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말이야.
AKMU <기쁨,슬픔,아름다운 마음>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햇빛 뒤에 그늘이 있는 건 사랑스런 모습이야.
슬픔과 그늘이 아름다운 마음이라거나, 사랑스러운 모습이라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온 세상이 아름다운 마음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가득 차있구나. 몰랐었다. 그래서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아이유 <무릎>
무릎을 베고 누우면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듣고 싶은 곡이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곡이다. 머리칼을 넘겨준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고, 또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 아닌가요?
아이유 <밤편지>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아이유가 보낸다면 모기라도 즐겁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널려있겠지만, 이 이야기에서의 반딧불은 아무 반딧불이 아닌 ‘그날의’ 반딧불이다. 같이 있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를 조용히 다시 그에게 띄우는 모습이 너무 예쁘지 않나요? 물론 아이유가 오버랩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음.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 주고 싶어
첫 소절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다는 가사가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던 곡. 나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여 계속 외벽을 만들고 아는 사람들을 늘려가고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찾는 사람들. 하지만 행복해야 하는 주체는 나이고, 불완전한 나를 마주하고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루시드폴 <고등어>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 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이 곡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는 자반고등어의 눈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상하게 저 부분을 들을 때마다 너무 슬픈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음.
강아솔 <다정하게 아름답길>
누구도 돌보지 않는 내 하루를 재운다
언젠가 오늘의 눈물은 모두 별처럼 빛나기를
다정하게 아름답길 다정하게 아름답길
천천히 내 귀에 대고 이야기하듯 던지는 곡의 클로징에 가사와 곡 타이틀을 찾아보게 되었던 곡이었다. 언젠가는 오늘이 이 가사의 주인공에게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추억의 장면이길 응원하게 된다고 할까? 다정한 건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
이건 좀 다른 경우인데,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온 세상을 위한 따뜻한 메시지인 줄 알았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멜로디라인도 보컬도 모두 부드럽고 따뜻해서 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온 인류를 위해 꺼져 달라는 내용이었음.
알버트 하몬드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for the peace, for the peace,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will you go away?
아무튼 평화를 위해 떠나달라는 말까지 듣고 나니, 가뜩이나 월요일이 얼마 안 남아서 슬픈 일요일이 더 우울해졌다. 다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