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디카 메모리를 털다

꽤 오래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진을 취미로 가졌던 때가 있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음. 그 무렵 잘 사용하고 있던 DSLR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 팔아치우고 들였던 작고 가벼운 소니 RX1. 생김새도 귀엽지만 다부졌고, 무엇보다 셔터를 누를 때 나는 중저음의 ‘철컥’ 소리가 — 물론 디지털로 만든 소리지만 —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지 않게 된 이후에도 이 녀석만큼은 팔지 못하고 지금까지 곁에 두고 있다. 평소엔 눈인사만 하는 편이지만 아주 가끔 전원을 켜 보기도 하는데, 액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직 살아 계셨어…’

그러다가 몇 년에 한 번쯤 내키면 바깥에 들고 나가기도 하는데,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오랜만에 몇 장 찍었으니, 기념으로 메모리를 한번 털어 볼까. 폰카랑 별 차이 없다는 사람도 많겠지만, 굳이 메모리에서 사진을 꺼내 와야 하는 수고를 생각하면 담긴 정성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 어쭈 — 분명히 말해 두고 싶다.

메타데이터를 보니 2024년 겨울이다. 계절과는 상관없이 매 주말 아침에는 늘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가는데, 그 중 방문 빈도가 가장 높은 올림픽 대교 북단의 매장. 게을러서 늘 앉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나.

이곳은 남향 통창이어서 빛이 많이 들어오는 편. 그런 이유로 블라인드를 내려놓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어두운 것을 좋아해서 이것도 마음에 든다. 집에 있을 때 대낮에도 암막 커텐을 닫고 있는 편인데, 아늑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함. 유튜브 볼 때도 잘 보이고, 살짝 눈을 감고 바로 잠들기에도 좋다. 그렇다고 카페에서 자는 건 아님.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곳도 존재하는데, 바로 석촌호수 옆 방이삼거리에 있는 스타벅스.(그래서 잘 안 감)

2025년 게르하르드 슈타이틀 전시에도 들고 갔었다. 전시를 좋아하지만 자주 가지는 못하는데, 우선 전시를 언제 하는지 모르고, 예매하는 법을 찾기도 귀찮고,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시는 정말 좋았다. 나는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콘텐츠를 좋아하고, 그것들에 경외심을 느낀다.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서, 혹은 서서, 고민하고, 수정하고, 다시 들어보고, 멀리서 보고, 또 조정하는 그 여정 자체가 가진 의미를 진중하게 생각한다. 세상에서 실물 서적이 없어지지 않기를 다시 한번 바래보며…

저녁 즈음으로 달려가는 시간에는 주방 쪽창에서 들어오는 빛도 꽤 예쁘다. 갱지에 부딛치는 것만으로도 반짝거려 눈이 부실 정도다. 이 때는 가만히 식탁에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봉투 안의 빵을 꺼내 먹으면 더 좋아지겠지만… 조금 웃긴 건, 데이빗 보위의 ‘Life On Mars?’같은 곡을 틀어놓으면 생각이 많아진다는 거.

작년에 아는 친구가 표를 구해 쥐어줘서 갔던 키아프에서, 질감과 색감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그림. 다시 봐도 너무 멋지다. 그때 이후로 처음 봄.

여기부터 어제 사진. 성수 근처의 스타벅스에 갔다가 봤던 신상 텀블러. 귀엽다. 귀엽다. 귀여워. 저걸 들고 다니면 누구나 다 안 어울린다고 할 것만 같음.

그 앞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플라스틱 재활용하는 기기를 구경했는데, 신기했다. 이렇게 기업차원에서 모두 홀린 듯 환경운동에 진심인 것이 너무 마음에 든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있는데 말야. 이런 기업이 세상을 리딩하길 바라는데, 거지같은 생성형 인공지능 회사들이 그럴 것 같아서 짜증남. 돈이 그렇게 좋나? 하지만 파타고니아에서 옷을 사려면 돈을 조금 벌기는 해야 함.

‘꺼져, 여기서 마시던가.’ 참고로 나는 외고를 졸업했음.

성수동으로 가는 도중에 발견한 건물. 대체 정체가 뭐냐? 영화 ‘황해’에 나오는 무서운 사람들이 안에 무더기로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어니언도 아직 그대로 있다. 나는 자리가 불편해서 잘 안 가는데, 몇년 전에 본부 액티비티를 하고 – 아마 향수를 만드는 거였나 – 들렀던 기억이 있다. 먼 기억처럼 느껴지는데 불과 삼년이 채 안 됐다. 오래 된 건가?

기아의 성수 브랜드 팝업 앞이다. 원래 오브제는 다른 것이었는데, 사진 귀퉁이에 이 자매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크롭해봤다. 같이 잘 놀다가 자기도 모르게 뭔가 실수를 저지른 꼬마 남자아이. 갑자기 싸늘해져 돌아서는 누나를, 꼬마는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가기도 자존심 상하고, 그렇다고 계속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고, 멘붕이 온 저 꼬맹이의 작은 뇌 안이 갑자기 궁금해졌음.

성수에도 타임스퀘어가 있다는 걸 혹시 아셨나요?


뭔가 사진이 너무 많아 귀찮아져서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어제 나는 너무 힘들었던 것 같네. 뭘 저렇게 많이 한거지?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해야겠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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