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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보드를 타러 갔다 와서 온몸이 성한 데가 없어요.
그녀는 운동신경이 꽤 좋은 편이라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운동을 즐기며 늘 주변의 칭찬을 받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보드는 조금 달랐다. 이번에 처음 강습을 받고 꼬박 하루를 탔는데도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늘 모든 운동에 잘 적응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도 그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평소 그녀의 운동신경에 대해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나도 그 이유가 궁금했다.
보드는 꽤 오래 타왔기 때문에 그것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알고 있다. 한 친구는 양다리가 구속되어 있는 것을 심리적으로 못 견디는 타입이었다. 속도를 내고 있는 순간에도 그것이 계속 거슬렸다. 갑자기 다리를 벌리거나 오므리고 싶어 못 견딘다는 거다. 보드를 타고 있는 순간에 다리를 왜 오므리고 싶어 지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어쨌든 결국 그는 보드를 포기하고 말았다.
다른 친구는 보드 날이 바닥의 얼음 부분을 지날 때 나는 소리를 못 견뎌했다. 그 소리만 들으면 너무 무서워서 주저 않고 싶어 진다는 거다. 내가 보기엔 주저 않고 싶어 지는 게 아니라 그때마다 매번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넘어지는 걸 교묘하게 트라우마처럼 위장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도 머지않아 보드를 정리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보드를 탄지 하루 차에 그런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을까? 뭔가 다른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어렸을 때 아빠의 손을 잡고 상급가 슬로프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이면 눈바닥 위에 서있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튜브 보트를 태워 바다에 데리고 들어갔는데 그게 뒤집어져서 죽을 뻔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깊은 물엔 들어가지 못한다. 내 인생에 수영은 없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인생은 그런 거다.
‘일단 보드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그 스피드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배운 첫날 이미 스피드를 느낄 정도로 슬로프를 내려올 수 있다니, 운동신경이 거의 선수급이라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의 첫날은 보통 낙엽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낙엽은 배웠어요?’
‘낙엽이요? 그게 뭔데요?’
이름이 뭔지도 가르쳐주지 않고 기술을 전수해 주는 강사도 있구나. 아무리 바빠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친구가 찍어준 동영상이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나도 보드를 탄지 꽤 오래돼서 설원을 누비는 영상은 꽤 오랜만이다. 겨울에는 역시 눈밭을 가르는 겨울스포츠 영상이 어울리니까. 그런데, 그 영상은 보드를 착용하고 서있는 정지영상이었다.
아니에요. 잘 보세요!
맞네. 그녀는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움직이고 있다기보다는 중력에 의해 아래로 아주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 정도만 돼도 속도감이 장난 아니라니까요?’
….
..
그럴 리가 없음. 그녀의 운동신경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의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